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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유게시판] 놀토의 건강관리
조회 105
회원이미지김은형
2008-03-24 18:26:02
 

이천 팔년 삼월 이십이일 토요일


놀토의 건강관리


 노는 토요일이었지만 우리 반은 축구를 하기 위해 아침부터 학교 운동장에 모였다. 건강관리위원회는 한 달에 한 번씩 운동회를 열기로 했는데 그 첫 번째 축구대회인 셈이다. 아이들은 하나 둘씩 모여들더니, 11시가 조금 넘자 거의 다 모였다. 아파서 병원에 간 주나와 부산 할머니 생신에 간 나연이 등을 빼고는 한두 명 정도만 안 오고 모두 참여했다.

 

 며칠 전부터 건강관리위원장인 대용이는 나에게 성화를 바쳤다.

“선생님, 애들이 안 오면 어떻게 하죠?

“오겠지. 걱정하지마”

하면 

 “아니에요. 안올지도 몰라요. 어떻하죠? 애들이 조금만 나오면 어떻하죠?”

하고 또 애가타는 목소리다.

 “그럼, 우리 끼리 하면 되지.”

 나는 여전히 낙관적으로 대답했다. 그러면 또 대용이는 불안한 얼굴로 말한다.

 “아휴, 애들이 안 나올 거에요. 어떻하죠?”

 아마도 대용이는 내가 아이들에게 강압적인 메시지를 날려서, 아이들에게 약속을 받아내기를 바라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종례시간에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건강관리위원장 대용이가 너희들이 나오지 않올까봐 걱정이 많은가보다. 대용아, 나와서 애들한테 축구시합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안내를 하렴.”

 그러나 대용이는 앞으로 나와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내일 꼭 11시까지 운동장으로 나와 주십시오.”

 나는 대용이 말에 얼른 말꼬리를 낚아채며 반문하는 작전을 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꼭 나와야 하는 거지? 안나오면 안되나? 우리가 꼭 나와야 하는 이유를 말해 줘!”

 그러자 대용이는 뭔가 논리적 설명을 해야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더듬으며 말했다.

“음, 그러니까 우리 건강관리위원회가 축구를 하는 이유는......그러니까.....우선 우리 반 끼리 친목을 다지고....그리고.....두번 째로...우리 건강을 좋게 하고....그리고 마지막으로는.....가을 축구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한 연습도 됩니다.”

 나는 옳거니 하며 외쳤다. 그렇게 뚜렷한 목적이라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안나올 리가 다며 눙쳤다. 하지만 나도 역시 80%정도만 나와도 성공이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요즘 에는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바빠서 수업이외의 시간을 낸다는 것이 워낙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도 강제성이 없는 그 이상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참여하지 않을 자유도 분명 있어야 한다. 만약 억지로 해야한다면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그건 분명 좋은 일이 될 수 없다.


  건강관리위원장인 대용이는 한 쪽 손에 기브스를 하고도, 점수판과 번호조끼, 골키퍼 장감, 공 등이 담긴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내려왔다. 역시 건강관리위원인 향준이는 아무리 말려도 한 쪽 다리에 기브스를 했음에도, 심판을 본다고 쫒아 다닌다. 축구 시합은 모두 육십 분으로 정했다. 홀짝으로 진을 짜되 전반전 이십분은 여학생끼리 시합하고, 후반전 이십 분은 남학생. 그리고 종반전 이십 분은 다시 남녀 혼합으로 하되, 그 중 10분은 여자공격, 남자 수비, 다시 10분은 여자 수비 남자 공격으로 공평하게 짰다. 이미 체육시간에 훈련이 된 터라 여학생들도 열심히 뛰었다.

 여학생이 시합을 할 때는 남학생 두 명이 심판을 보고, 남학생들이 시합을 할 때는 여학생 두 명이 심판을 보았는데, 시합을 하는 동안 심판인 아영이와 현정이는 운동장 한 가운데 편안히 앉아서 이리저리 구경만 하고 있었다. 심판은 아무 할 일이 없었다. 왜냐하면 시합 중 단 한 번도 반칙을 하거나 의견이 부딪히는 분쟁은 없었다. 아이들은 열심히 뛰었지만, 무리하게 이기려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현정이가 자신의 판정에 아이들이 불복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을 듣고, 아이들에게 미리 설명했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서 축구시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 하되, 상대를 배려하고 절대로 다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또 심판의 판정은 무조건 따라야 하며, 심판이 보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설명을 그렇게 완벽하게 수용하는 아이들의 수준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다시 한 번 아이들에 대해 감동한다. 누가 아이들이 이기적으로 변했다고 말하는 것일까? 아이들의 매너는 10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좋아졌다. 누가 뭐래도 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우리의 과거보다 백 배 나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삶에 대한 낙관은 평화를 준다. 나는 오늘 평등과 평화를 맘껏 느낀다.


 금요일 밤, 지방에서 올라온 선생님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느라 밤을 꼬박 새웠지만, 나는 조금도 피곤하지가 않다. 아이들을 데리고 피크닉을 온 엄마처럼,  쵸코파이와 생수를 돗자리 위에 늘어놓고  앉아 구경한다. 늘 입던 한복을 벗어버리고 청자켓에 청바지, 그리고 선글라스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아이들을 응원한다. 공을 쫒아 뛰며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여자 아이들의 뺨과, 사자처럼 포효하는 남학생들의 우렁찬 목소리를 듣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다. 그 애들이 벌컥벌컥 물을 마시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즐겁다. ' 얘들아 재미있었지?' 하는 질문에 아이들은 우렁찬 소리로 '예'라고  대답한다.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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