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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국어교사모임 바로가기



모임 소개
 
 
   걸어온길 
이 글은 김수업 선생님께서 전국국어교사모임 스무돌을 맞아
함께 여는 국어교육 2008년 5,6월호에 에 쓰신 글을 발췌한 것입니다.
원문은 이 곳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국어교사모임에 희망을 걸고
 
김수업
 
1. 국어교사모임을 사랑하는 속 뜻
전국국어교사모임 스무돌을 마음에 새기며 돌아보는 글을 쓰라고 하는데. 꽁무니를 빼고 싶지 않았다. 읽는 사람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따져보지도 않고 덥석 그러마고 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 헤아려 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그러마고 했으니 이처럼 철없는 짓이 어디있을까? 그러나 이렇게 웃기는 짓은 모임에 바치는 내 사랑의 속살 그대로다. 이처럼 철없고 웃기는 사랑에 빠져 나는 해를 쉬지 않고 한 마음으로 국어교사모임을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나 나는 모임을 사랑한 것이 아니다. 나는 국어교사모임보다 국어교사를 사랑했고, 국어교사보다 국어교육을 사랑했다. 국어교육을 사랑하자니까 국어교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고, 국어교사를 사랑하자니까 국어교사모임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뿐이다. 이것은 말장난이 아니다. 나는 ‘우리말 가르치는 일’을 지금도 사랑한다. 내 삶을 걸어서 끔찍이 사랑한다. 그래서 ‘우리말 가르치는 일에 몸 바쳐 살아가는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이 모여서 만든 ‘모임’까지도 사랑하지 않을 수 가 없다. 그러니까 국어교사모임에 들어오지 않아도 우리말 가르치는 일에 몸 바친 사람이면 나는 누구나 사랑했고 또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우리말 가르치는 일에 혼자 몸부림하는 사람보다는 여럿이 함께 손잡고 슬기와 힘을 모아 나가는 모임의 사람을 더욱 사랑한다.
 
2. 국어교사모임에 끌린 삶
전교조 국어교사모임이 경주에서 첫 여름 연수를 하는데 특강을 해 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국어교사들이 우리말을 잘 가르쳐보려고 스스로 모여 연수를 하겠다는데 거들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에 가겠노라고 했다. 그런 뒤로 모임은 나를 때때로 불러주어 서울로 부산으로 광주로 대구로 수안보로 쫓아다녔고, 모임이 진주(고성 상족암)까지 와서 연수를 벌이기도 했다. 이러면서 모임으로 쏠리는 내 사랑이 깊어 가던 즈음 정부가 제 7차 교육과정을 만들면서 중등 국어교과서를 공모하는 바람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정부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어느 날 느닷없이 공모한다는 공문을 전국에 보내놓고 뜻이 있으면 스무날 안에 교과서 전체 틀과 더불어 한 단원을 온전히 만들어서 제출하라고 했다. 정부가 우리말 가르치는 일을 가지고 이처럼 눈감고 아옹 하는 장난을 치는데 못본 체 할 수가 없어 어설프게 맞추어 응모를 해놓고 나는 우리말 가르치는 사람을 만나는 족족 이래도 되느냐고 묻고 다녔다. 얼마를 지난 어느 날 모임 회장한테서 만나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 서울로 달려가 만났더니 깃발을 들어주면 모임에서 국정 교과서에 맞서는 대안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숱한 토론과 논쟁을 거치며 모임은 국정교과서의 철옹성을 무너뜨린 『우리말 우리글』을 일구었고, 다섯 해 동안의 피땀 어린 가시밭길을 거치며 이름 그대로 ‘전국’조직으로 자라났다. 그리고 나를 한 집안 식구처럼 여기면서 정년을 하면 사무실에 나와 함께 일하자고 했다.
모임은 그 사이 사단법인으로 탈바꿈을 했고 가까운 아파트에 방을 얻어서 우리말교육연구소를 설립하고 나를 맞아주었다. 연구소는 모임이 끊임없이 우리말 가르치는 일을 새롭게 바꾸며 날아오를 수 있도록 힘을 만들어내는 몫을 다하는 곳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전임 사무국장과 상근 간사를 두고 우선 우리말교육대학원과 교과서 편찬을 위한 교육과정모임과 우리말교육현장학회와 통일교육위원회 같은 네 가지 일을 시작했다.
 
3. 국어교사모임과 나 사이
나는 국어교사모임을 스무 해 가까이 사랑하며 살았는데, 처음에는 나만의 짝사랑이었다. 맨 처음 경주에서 만나 그때부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우리말을 잘 가르쳐보겠다고 일어선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터럭만한 도움이라도 된다면 가진 것을 다 내주어도 아까울 것이 없었다. 이런 내 짝사랑의 세월을 십년도 훨씬 넘기고 『우리말 우리글』을 펴내는 다섯 해를 보내면서 모임도 나를 사랑하기 시작하는 듯했다. 내가 조심스럽게 제안한 ‘전국이야기대회’도 곧장 알아듣고 서슴없이 받아들여 열성으로 가꾸면서, 정년을 하고나면 모임 사무실에 나와 좀 더 가까이서 함께 일하자고 재촉도 해서 이제는 짝사랑이 참사랑으로 바뀌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제는 더불어 살을 부비며 사랑을 나누는 세월도 어느덧 세 해를 넘겼고, 내 나이 벌써 일흔을 넘어서 주고 싶어도 줄 만한 사랑이 남아 있지 않는다. 모임은 나에게 날이 갈수록 깊은 사랑을 베풀고 있다. 우리 사랑이 고랑은 이랑 되고 이랑은 고랑 되는 꼴로 뒤집어진 셈이다.
 
4. 국어교사모임의 앞길
사람이 스무 살이면 어른이 되었다고 한다. 어른이 되었다는 말은 다 자랐다는 말이다. 모임도 스무살이 되었으니 다 자라 어른이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우리 모임은 어른이 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듯하다. 전교조 사무실에서 따로 둥지를 틀어 나오고, 우리말을 가르치는 것으로 계간 잡지를 펴내고, 국정교과서에 맞서는 대안 교과서를 만들어내고, 모임 조직을 사단법인으로 탈바꿈시키고, 모임 조직 안에 초등국어교과모임을 싸안고, 우리말교육연구소를 세워서 우리말교육대학원과 우리말교육현장학회를 열고, 새로운 교육과정에 발맞추어 국민공통기본교육의 모든 학년용 국어교과서를 만들고 서울 중심인 종로구 명륜동에 삼층의 아담한 회관을 마련하고, 이런 일들은 지난 스무 해 동안 모임이 자라면서 이루어낸 일의 대략에 지나지 않는다. 이만큼 놀랍게 자라났으니 다 자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실상 모임은 이제야 걸음마를 하면서 뒤뚱거리는 어린 아기에 지나지 않는다. 모임은 우리말 가르치는 일을 올바로 하려고 태어났는데 그 일을 거뜬히 하려면 앞으로 얼마나 더 자라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자라야 할지’ 모른다 했으나 그것은 시간이 아니라 힘과 슬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모임이 무슨 힘과 슬기를 어떻게 기르면 그런 어른이 되는가? 두 말할 것도 없이 우리말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힘과 슬기를 든든하고 넉넉하게 길러야 한다. ‘우리말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힘과 슬기’란 무엇인가? 이 물음의 대답은 네 가지를 갖추어야 채워진다. 첫째는 우리말이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아는 슬기, 둘째는 왜 우리말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제대로 아는 슬기, 셋째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제대로 아는 슬기, 넷째는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아는 슬기와 그것을 가르쳐내는 힘이다. 이들 네 가지 슬기와 힘을 든든하고 넉넉하도록 길러 지니면 그제야 비로소 모임은 어른이 되는 것이다.
 
함께 여는 국어교육 2008년 5,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