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대 대학원 2학기에는 임수만 교수의 시 강의를 들었다. 여기 글들은 그 과제 중 일부이다. 세 시간 강의 중 1시간 정도는 서로 좋아하는 시를 사연과 함께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이 참말 좋았다.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전해야 할 시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북어대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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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의 끝
이성복
치욕이여,
모락모락 김 나는
한 그릇 쌀밥이여, 꿈 꾸는 일이 목 조르는 일 같아
우리 떠난 후에 더욱 빛날 철길이여!
하루 세 끼 매일 먹는 이놈의 밥! 우리에게 밥을 주시기 위해 부모님들은 당신의 하루하루를 말없이 무덤에 묻어왔다. 그 밥벌이의 고통스런 전통은 이제 우리에게 넘어온다.밥 때문에 우리는 깨끗해지기도 더러워지기도 한다. 물론 이 시에 따르면 꿈꾸는 일이 목을 조르는 일만큼이나 치욕스러워지는 것이 현실의 밥벌이겠지만 말이다. 이 시는 그렇게 이해하면 참 쉽다.
시와 노래로 열었던 아이들과의 조회 시간에 “노동의 밥, 생명의 밥을 먹을 것이냐. 아니면 치욕의 밥, 영혼의 죽음에 이르는 밥을 먹을 것이냐는 여러분들 결정에 달려있다. 혹시 노력하지 않아도 호의호식할 수 있는 삶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치욕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한 그릇 쌀밥이 그대의 것이리라.”며 일갈한 적이 있었다. 참 쉬운 이해의 예이다.
그때가 이십대 중후반이었으나, 이제 난 어느새 마흔이 되었다. 그 사이 결혼을 했고, 아이 둘이 태어났으며, 아이의 공부와 진로를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당시 부장 선생님들은 교장․ 교감이라는 이름의 관리자가 되었고, 선배와 동기들은 부장이 되어 그들을 돕고 있다. 나는 결코 달라진 것이 없는 청년이라고, 도종환 시인의 <어릴 때 내 꿈은>을 가슴 속에 묻고 사는 열혈 교사라고 항변하나, 내 삶의 조건들은 과거보다 훨씬 교묘하고 세련되게 나를 속박한다.
이제 나는 위 시를 쉽게 읽지 못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현실의 삶은 읽고 이해하는 시보다 훨씬 어려운 것인 게다. 이성복은 위로의 시인이니, 나보다 더 큰 밥벌이의 번민과 갈등 속에서 이 시를 지었을 거라고 위로받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