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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경'과 '도대체'가 같은 뜻의 낱말이고 '류수생'의 뜻은 '혼자 사는 학생'이라는 것  
 알고 계신가요?
 이 게시판은 우리 모임과  조선어문 교수 연구회가  수업, 일상 이야기들을 나누는 곳 입니다.
 국어와 조선어문의 같지만 다른 점을 나누며 함께 우리말을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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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1년 제7회 한중교류학술제 보고서 (이성수) 올립니다.
조회 4008
첨부파일
회원이미지권정혜
2012-05-19 08:54:27
       
일년 만에 다시 작년 학술제를 돌아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일정 하나하나 꼼꼼하게 기록하고 정리해 주신 이성수 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함께 다녀온 처지지만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신 이성수 샘께 존경을^*^
그리고 역시 경험은 기록하지 않고 그냥 지나처버리면 훗날엔 아련한 굵질한 기억만 남아 세세한 내용은 망각의 세계로.
이성수 샘 고맙습니다. 찬찬히 정리해주시고 그 의미까지 짚어 주신 공을 ~~
참고로 부산 백양고 이성수 샘은 올해 통일국어교육위원장의 중책을 맡으셨습니다.~~
보고서 올립니다.
사진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함께 올리는 파일을 내려 받아서 보시면 원고의 원본의 보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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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회 한민족 학술토론회 보고서
 
한민족 국어-조선어문 교육의 발전과 전망
 
부산백양고 교사 이성수
 
 
2011년 7월 28일부터 7월 31일까지 4일간 중국 요녕성 심양시 조선족 제4중학교에서는 전국국어교사모임 선생님들과 동북 3성(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의 조선어문 선생님들이 한데 모여 서로의 교육방법과 내용을 나누는 학술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 학술토론회는 올해로 7회째를 맞이한 ‘한민족 학술토론회’로 중국 북경에 있는 ‘코리아 언어문화교육센터’와 ‘전국국어교사모임’ 그리고 ‘요녕성 기초교육교원양성센터 조선족 교육부’의 주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글은 이 학술토론회의를 기록한 보고서입니다.
 
행사의 전체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7월 27일 - 한국측 참석자 인천공항 출발, 심양 도착, 자체 일정
7월 28일 - 오전 심양 고궁, 9.18 사태 기념관 방문, 오후 조선족 제4학교 학술회 일정시작
7월 29일 - 오전 배움의 공동체(박현숙), 오후 조선어문 교육 사례 발표
7월 30일 - 오전 토론의 전사(유동걸), 오후 조선어문 교육 사례 발표, 저녁 민속촌 방문
7월 31일 - 오전 종합토론회, 오후 한국측 참석자 심양공항에서 귀국
 
 
애초의 출발은 한 통의 전화였다. “선생님, 중국 다녀오시지 않을래요?” 통일국어위원회 위원장으로 계시는 권정혜 선생님의 전화. 요지인즉슨 ‘이번 여름에 심양에서 7회 한민족 교류대회가 열리는데 함께 갈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 함께 할 사람들을 이리저리 수소문하다가 예전에 참가를 했던(저는 1회, 2회 행사에 참여를 했었습니다) 내게 연락이 왔던 것.
 
마침 학교를 벗어나 어디라도 떠나고 싶었던 나는 옳다구나 싶어서 가겠다고 했고, 여름방학 보충 시간표를 이리저리 옮기고 바꾸어 중국에 다녀올 수 있는 시간 일주일을 빼낼 수 있었다. 솔직히 그때의 마음은 ‘학교만 아니라면 어디건 좋다!’는 심보였으니, 딱히 한민족 교류 대회에 가서 무얼 해야지 하는 사명감 같은 것은 없었다. 그 뒤로 닥칠 이런저런 일거리에 대한 예감이 전혀 없었던 셈. 한동안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고 계속 소식이 멀리서 들리더니 결국 확정된 참석자 명단은 다음과 같았다.
 
권정혜(전 서울 모임 회장, 통일국어위원회 위원장), 김태철(전 경기 모임 회장, 통일국어위원회 부위원장), 정경우(전국국어교사모임 이사장), 유동걸(서울 모임 회장, <토론의 전사> 연수 강사로 활동), 박현숙(경기 모임, <배움의 공동체>를 실천하시는 분), 배성완(대구 모임 회장), 설지형(전북 모임), 강양희(경기 모임), 이성수(부산 모임)
 
뭐야! 모임 안팎으로 쟁쟁한 분들만 간다. 지역 모임 회장 선생님들이나, 이사장 선생님, 그 밖에도 배움의 공동체 활동으로 널리 알려지신 박현숙 선생님까지!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여기 끼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럴 줄은 몰랐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괜히 한민족 교류대회에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 ‘뭐야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만 갈 수 있어?’ 하는 인상을 드릴까봐 한 마디 덧붙이자면, 그런 거 아닙니다.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열린 행사이니 이 점 유의해주시길!
 
 
7월 27일(여행 1일째)
 
국경을 넘는다는 건, 다른 세계를 만나는 일
 
7월 27일, 오전 8시 비행기로 인천에서 출발을 했다. 출발하는 날 수도권에 폭우가 쏟아져 서울에서 오시는 선생님들이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고, 과연 제때 떠날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하늘이 도운 덕분인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출발을 할 수 있었다.
 
떠난 지 두 시간이 채 지났을까? 오전 11시 무렵 심양 공항에 도착했다. 한데 공항 수속을 하고 나오는데, 공안(중국의 경찰)이 우리를 불러 세운다. 우리가 들고 나온 짐 중에 책 상자 두 개를 가져다가 이게 뭐냐고 묻는다. 중국은 책에 대해 민감하다. 중국의 통치체제에 비판적인 입장을 담고 있는 책들의 유통을 철저히 막는다.
 
우리는 책 상자 포장을 뜯어 보여주면서도 중국말이 안 되니 이걸 뭐라고 설명하나 당황하고 있는데, 위원장으로 여러 차례 중국에 다녀가신 권정혜 선생님이 골판지에 바로 ‘한국어, 문학, 어학’이라고 한자로 쓰면서 공부하는 책이라고 설명을 하신다. 공안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 책 저 책 떠들어 본다. 몇 권을 들춰보다가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챙겨서 가란다.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면서도 ‘뭐야! 왜 이렇게 책에 민감해?’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에서는 아직도 사상 통제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새삼 실감이 났다. 인터넷에서도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가 모두 통제 대상이 되어 사용할 수 없다. 아직 중국은 우리와 ‘다른’ 나라다. 국경을 넘는다는 건 이런 거다. 우리와 다른 체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거다. 이 점은 조선어문 선생님들을 만날 때에도 잊지 말아야 하는 기본 상식이지만, 우리는 그걸 간혹 잊곤 한다.
 
우리가 도착한 심양은 예로부터 사통팔달인 교통의 요지로 실크로드의 북단에 해당한다. 청나라를 세운 누르하치가 처음 기세를 올린 곳이라서 북경이 정식 수도로 정해지기 전까지 청나라의 수도였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요충지라고 하겠다. 시내에 가면 심양 고궁이 아직 그대로 있어서 청나라 초창기의 문물을 살펴볼 수 있다. 지금은 요녕성의 성도로 동북 지방의 핵심이다. 동북 지방은 조선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고 역사적으로도 우리와 인연이 깊어서 예전부터 북한과 남한이 모두 교류를 많이 해온 지역이다. 동북 지방의 요녕성, 흑룡강성, 길림성을 흔히 동북 3성이라고 하는데 이 지역에 조선족들이 밀집해 거주하고 있다. 조선족의 거주 지역 중에서는 가장 번화한 곳으로 젊은 조선족들이 많이 모여 있다고 한다.
 
우리는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 한민족 교류대회 행사 이전에 하루 동안 심양 주변 관광을 할 예정이다. 공항에서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심양 현지의 관광사 안내원이었는데, 그 분도 연변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구하기 위해 이곳 심양으로 나온 젊은 조선족이었다. 우리는 그 조선족 여행 안내원의 뒤를 따라 심양 시외에 있는 유명한 관광지 ‘본계수동’으로 향했다.
 
‘본계수동’은 일종의 동굴인데, 동굴 안에 물이 가득 차 있어서 배를 타고 구경을 해야 한다. 그런데 동굴의 길이가 얼마나 긴지 보트를 타고 30분을 넘게 안으로 들어가도 끝이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얼마나 추운지 입구에서 나눠주는 솜잠바를 입었는데도 춥다. 한여름에도 이 정도라면 겨울에는 어느 정도일까? 동굴에서 나와 동굴에서 흘러나온 물이 고여 만든 연못에서 잠시 쉬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관광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푼 우리는 다음 날 행사를 위해 역할 분담을 확인해봤다. ‘한민족 교류 행사’는 조선어문 측 선생님들의 발표와 우리 측 발표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 쪽에서는 ‘유동걸’ 선생님과 ‘박현숙’ 선생님이 각각 ‘토론의 방법’과 ‘배움의 공동체’에 대해 강의를 하기로 했다. 이전까지는 여러 선생님들이 다양한 주제로 발표를 했으나, 다양하게 많이 듣는 것보다는 하나를 들어도 제대로 공부하는 것이 낫다는 중국 측의 의견을 받아들여 지난 해부터 그렇게 방향이 달라졌다고 한다.
 
서로의 교육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에서처럼 간단히 2시간 정도의 강의로는 그 전모를 파악하기 쉽지 않아서 한 가지 주제를 깊이 있게 들어보는 것이 훨씬 유익하고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무튼 그 덕에 발표로 나서시는 두 분 선생님 이외 다른 분들은 발표의 부담(?)을 많이 덜었으니 그건 기대하지 않았던 반사이익!
 
그 다음으로는 토론자를 확인했다. 토론자는 중국측 발표의 내용에 대해 우리가 궁금한 것들은 나서서 물어보는 사람이다. 조선어문 선생님들이 우리가 출발하기 전에 미리 발표문을 보내줬기에 그 원고들을 나눠서 토론자를 배정했는데, 실제로 그 숙제를 다 해온 사람은 권정혜, 강양희, 설지형 이렇게 세 분의 여자 선생님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 나를 포함한 남자 선생님들은 토론문을 준비해오지 않아서 권정혜 선생님에게 ‘보리 문딩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행사 진행과 사회는 토론문 준비를 하지 않은 불성실한 세 사람, 김태철, 배성완, 그리고 나 이 사람들이 맡기로 했다. 그 이외에도 종합토론, 사진, 동영상, 기록 및 보고서 등등의 역할들을 나누어 맡고 행사 준비를 하고 나니 어느새 바깥이 어둑어둑해져 있다. 저녁은 심양에 있는 북한 음식점에서 먹기로 했다. 예정보다 많이 늦어진 저녁을 먹고 중국의 밤공기를 쐬며 첫 날 저녁을 마무리했다.
 
 
◎ 여기서 잠깐! - 조선어문 교육과 관련해 궁금한 것들
 
조선어문이란 중국에서 조선족의 언어 교육을 공식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우리는 국내에서는 ‘국어’, 국외에서는 ‘한국어’라는 용어를 쓰고 있으나 중국은 북한과의 오랜 수교로 ‘조선어’라는 호칭이 더 일반적이다. 실제로 ‘조선어문’ 교육은 1980년대까지 북한의 조선어 교육과정을 본받아 이루어졌다고 한다. 남한과 중국의 수교 이후 점차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조선어문’ 교육에 남한의 교육과정이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최근 개정된 ‘조선어문 교육과정’에서는 남한의 제 7 차 교육과정이 많이 영향을 끼쳤다고. 여기서 독자들을 위해 중국 내 소수민족의 하나로 대우받고 있는 조선족의 조선어문 교육에 대한 실상을 간단히 소개한다.
 
질문 1. 조선족 교육에서 조선어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은?
- 동북 3성(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의 상황이 달라서 일반화하기 어렵다. 길림성의 경우 조선족이 대다수여서 조선어가 일상어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한어에 못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요녕성과 흑룡강성의 경우는 조선족 학생이라고 해도 조선어보다 한어가 더 익숙하다. 학교에서는 조선어를 쓰는 것이 원칙이라고 해도 그걸 지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조선어 수업을 빼면 다른 수업 시간은 모두 한어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조선어 교육은 우리나라의 제2 외국어 수준에 머무는 듯 하다.
 
- 실제로 이번 토론회에 참가한 선생님들께서도 우리와는 조선어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이따금 당신들끼리의 이야기를 나눌 때라든지, 설명하기에 어려운 표현이 나올 경우 한어로 먼저 표현을 해보고 바꾸어 말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조선족이니 당연히 조선어를 갈고 닦아 그네들이 잘 가꾸어 써왔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그들을 바라보지만, 중국에서 조선어를 지키며 살아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질문 2. 조선어문 교육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 조선어 선생님들이 지금 당면해 있는 문제는 이런 조선어 교육의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 조선족 학생들은 조선족이라는 자각이 있어도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고 생각하고, 한어가 조선어보다 친숙하고 편하다. 그리고 영어 교육을 강조하는 중국의 현재 교육추세 때문에 조선어 교육이 더욱 외면받고 있다.
 
- 조선족 학생들이 조선어를 한어보다 잘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어보다도 더 낯설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 현재 조선어 교육이 놓인 상황이다. 이런 문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조선어 선생님들은 한국의 새로운 교수기법과 자료들을 받아들이고 있으나 가야할 길은 아직 멀다.
 
- 우선 가장 큰 어려움으로 지적할 것은 ‘독서 자료’ 즉 도서의 부족이다. 조선어로 되어 있는 좋은 텍스트가 태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교과서에 기대는 경우가 많은데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만으로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어렵다. 한국과 교류가 확대되어 한국의 방송을 접하는 비중은 늘어났지만, 도서를 구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고 그러다보니 조선족 학생들이 방송을 통해 한국을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는 언어 능력을 기르는 데에 보탬이 되지는 않고 있다.
 
- 이번 발표회의 발표 주제를 보면 ‘독서’와 관련된 주제가 압도적으로 높다. 그것은 조선족 학생들이 일상 회화 수준의 조선어는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발표나 토론과 같은 언어 활동 더 나아가 기사문, 논설문과 같은 공식적인 글을 쓰는 데에 필요한 고급 능력은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7월 28일(여행 2일째, 행사 1일째)
한민족 교류 대회의 시작은 이 날 오후부터다. 행사 장소인 조선족 제4중 민족학교로 옮기기 전 오전 시간을 이용해서 심양의 고궁을 둘러보기로 했다. 심양은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이 중국 영토 전체를 지배하기 전,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국력을 키워가기 시작했던 초기의 도읍지다. 심양 고궁은 청의 시조인 누르하치를 중심으로 초기 청나라의 위세를 둘러볼 수 있는 곳으로 심양 시민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 한다.
 
고궁을 둘러보다가 연변에서 출발하신 조선족 선생님들 일행을 만났다. 연변에서 오신 선생님들은 어제 기차로 출발을 해서 오늘 오전에 도착을 했는데 시간이 좀 남아서 심양 고궁을 구경하고 학교로 가실 예정이라 한다. 우리는 두 시간만에 인천에서 심양으로 올 수 있었는데, 비록 기차를 이용했다고 해도 연변에서 심양까지는 하룻밤을 기차에서 보내야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먼 거리다. 중국의 크기가 새삼 놀라웠다.
 
심양 고궁은 생각보다 심심하다. 규모가 북경의 자금성처럼 압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리 눈에는 충분히 크다. 그런데 중국의 궁 안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 것이 전통이라 무척 삭막해보인다. 거대한 전돌들이 깔린 너른 장소에 군데군데 건물만 서 있다. 확실히 우리 나라와는 정서적 미감이 다르구만 하는 생각을 하며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다가 궁궐 안에서 아기를 키우던 곳인 듯한 방을 들여다보았는데, 작은 요람이 그네처럼 매달려 있고 그 안에 강보가 담겨 있는 걸 봤다. 아주 먼 옛날에도 이렇게 아이들은 애지중지하며 키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궁궐 안이 새삼 사람이 살았던 공간인 것처럼 느껴졌다.
 
고궁을 둘러보고 나서는 9. 18 기념관에 갔다. 이 기념관은 1931년 일본이 만주 일대를 지배하기 위해 거짓으로 꾸며 일으킨 9.18 사태의 전모를 기록해놓은 기념관이다. 이 사건으로 일본은 만주 일대를 지배하며 만주국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잘 모르겠다. 국사 시간에 근현대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배우기는 했지만 주로 우리 나라와 관련된 것들만 배우다 보니 주변 나라들의 정세와 사건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중국에서는 중국과 일본 사이의 충돌이 본격화 사건이자, 만주국이 수립되기 시작한 계기이면서 많은 중국인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 무척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사건이라는데 막상 나는 오늘 처음 들었으니. 근현대사를 잘 모르는 우리, 그리고 동아시아 전체의 관계 속에서 한국을 바라볼 줄 모르는 우리. 역사 공부를 ‘남한’의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서 다시 살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기념관은 공들여 지은 듯 했다. 단순히 사료만 전시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실상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실감나는 모형 전시에 공을 들였다. 빨치산 활동을 하던 중국 공산당들이 모여 회의와 식사를 하는 모습들을 실물 크기 모형들로 제작한 것도 볼 수 있었다. 이채로운 것은 젊은 시절의 김일성을 볼 수 있다는 것. 항일전사로 이름을 떨치던 젊은 날의 김일성 모습을 보는 것은 낯선 경험이다.
 
중국을 아직 우리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기념관을 조성해놓은 것을 보니 우리보다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우리의 독립기념관 정도의 규모는 아니지만 9.18 사건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해서 이렇게 기념관을 지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다. 기념관도 관람객들이 구경만 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때의 상황을 실감나게 경험할 수 있도록 설치한 것이 그저 자료만 나열하고 있는 우리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 무렵 드디어 조선족 제4중 민족학교에 도착했다. 학교는 생각보다 무척 크다. 학교 건물이 두 채, 그 뒤로 식당 건물이 따로 있고, 기숙사 건물까지 별도로 세워져 있다. 운동장도 한국의 웬만한 학교 운동장보다 훨씬 크다. 운동장 주위로는 400미터 트랙까지 깔려져 있어서 제법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원래 시내에 있었을 때는 이보다 규모가 작았는데 시외 개발 지구로 이사를 나오면서 규모를 키웠다고 한다. 게다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학교까지 함께 운영을 하고 있어서 시설이나 규모가 심양에서도 큰 편에 속한다고 한다.
 
기숙사 방배정을 받고 짐을 풀고 나니 드디어 공식 행사를 시작하는 셈이다. 학교 건물 3층에 마련된 시청각실에서 학술회 개회식을 열었다. 조선족 제4중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학교 선생님들의 간단한 인사말, 그리고 조선어문 선생님들의 인사말, 국어교사모임 쪽의 인사말이 이어지는 개회식을 마치고 본격적인 발표가 시작되었다.
행사 시작에 앞서 학교 건물을 슬몃 둘러보며 올라온 나는 행사가 열리는 바로 옆, 도서관이 눈에 들어왔다. 도서관은 잠겨 있었지만 창문이 낮아서 안이 잘 들여다보였는데, 책이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최근의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건 한쪽 벽면에 크게 ‘책 읽는 민족은 번영하고, 책 읽는 국민은 발전한다’는 글귀가 한글로 걸려 있는 것이었다. 온통 중국어 일색인 곳에서 한글을 보니 이곳이 조선족 민족학교라는 걸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서관 규모에 비해 책은 그리 많지 않아서 책이 몹시 귀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도중 우리가 한국에서 보낸 책이 학교로 오지 못하고 중간에 공안에 의해 압수당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행사에 참여하신 선생님들을 위해 100여 권이 넘는 책들을 챙겨서 보내온 것인데 공안에서 그 책의 내용이 의심스럽다고 압수를 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공안이 절대적이다. 한 번 결정하면 그 결정이 번복되는 일이 드물다고 한다. 말글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다 그렇겠지만, 조선어문 선생님들은 한국의 책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으시다. 조선어나 한국어로 된 책들을 접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써 준비한 책들이 모두 허공으로 사라져버리니 조금은 허탈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직접 챙겨간 책들은 다행히 전시해놓을 수 있었다. <문학시간에 고전읽기> 시리즈를 비롯해서 여러 책들과 권정혜 선생님이 자서전 쓰기 수업을 하셨던 결과물, 박현숙 선생님 아이들이 시쓰기 수업한 결과물, 배성완 선생님의 수업 결과물, 대구지역 1정 연수 교사들이 만든 연수자료집 등의 자료를 늘어놓으니 선생님들의 관심이 폭발적이다. 들고 오는 것이 짐이 되고 가지고 다니는 것이 번거롭고 힘이 들긴 했지만 이렇게 조선어문 선생님들이 좋아하시니 그걸로 갖고 오면서 한 고생은 싹 사라졌다.
 
본격적인 발표가 시작되기에 앞서 다소 서먹한 분위기를 풀어야 한다. 권정혜 선생님이 칼을 아니, 카드를 뽑으셨다. 전날 한국에서 온 선생님들끼리 먼저 해보았던 ‘가치 카드 뽑기’ 활동으로 분위기를 풀어보자는 것. 낭랑한 권정혜 선생님의 목소리가 강의실 안을 채운다.
 
“먼저 한 번 웃어볼까요? 기분이 좋아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기분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목청이 터져라 지붕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웃어봅시다. 이렇게 길게 웃으면 건강에도 좋고, 기분도 좋아집니다.”
 
‘그냥 웃으라’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하하하하 소리를 내면서 웃음 비슷한 흉내를 내는데, 차츰 주위에서 웃음 소리가 커지니까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하지만 15초 이상 그 웃음을 이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웃고 나니 분위기가 편안해졌다. 그런 분위기에서 권정혜 선생님이 가치 카드를 소개하신다.
 
“가치 카드란 것이 있습니다. 카드마다 ‘자제력’이라든지, ‘분별력’이라든지 어떤 가치가 적혀 있는데요. 신기하게도 카드를 집는 사람의 평소 모습과 닮은, 또는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그런 단어들이 나옵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이 가치 카드를 이용해서 소개해볼까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세 장의 카드를 뽑으시면 됩니다. 그 세 장의 카드마다 적혀 있는 단어를 이용해서 자기 소개를 하시는 겁니다.
 
저를 예로 들어보면 성찰, 명예, 배려 이렇게 세 개의 단어를 뽑았는데요, 저는 지금까지의 제 수업이 어땠는지 제 교사로서의 삶은 어땠는지 되돌아보며 성찰을 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통일국어위원회의 회장으로 위원회의 명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위치에 있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서로 처음 뵙는 분들과 함께 2박 3일간의 일정을 이끌어가야 하니 선생님들 하나하나의 생각과 고민을 충분히 배려하면서 일정을 진행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 소개를 하시면 됩니다.”
 
권정혜 선생님의 소개를 듣고 나니 어떻게 하면 되는지 조선족 선생님들이 쉽게 이해를 하셨는가 보다. 활달한 성격의 김일순 선생님이 먼저 나서서 카드를 뽑으셨다. 신기하게도 ‘능동성’이란 단어가 나왔다. 김일순 선생님의 성격과 일치하는 카드다. 활달하고 씩씩하게 김일순 선생님이 자기 소개를 하시자 그 다음은 일사천리. 발표회장 안에 계신 선생님들의 자기 소개가 끝나자 분위기는 한결 가볍고 여유롭다.
 
 
◆ 28일 오후 조선어문 선생님들의 발표1(사회자 김태철)
 
1. 학생독서에 대한 지도와 사고(하얼빈 강혜숙) - 토론자 강양희
2. 2번 과외독서에 관한 지도방법(하얼빈 김선녀) - 토론자 강양희
3. 독서의 불을 지피는 사람이 되자(길림 김염화) - 토론자 설지형
 
 
이번 행사가 시작되기 이전 조선어문 선생님들은 17편의 원고를 미리 써서 한국으로 보내주셨다. 그 원고를 우리가 미리 읽고 발표를 들어보고 싶은 원고를 미리 추려 다시 알려드렸고, 이번 행사에서는 전체 원고 중에서 9편의 발표를 듣기로 했다. 첫날 오후에는 세 분의 발표가 있었다. 그 중에서 인상깊었던 김염화 선생님의 발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본다.
 
김염화 선생님은 단정하고 차분한 모습의 여 선생님으로, 말씀 역시 조용조용하게 그러나 단단한 힘이 있는 목소리로 발표를 하셨다. 발표의 시작을 ‘독서는 마치 타오르는 불과 같다. 처음에는 불을 붙이는 사람의 힘에 기대지만 일단 불이 붙으면 스스로 타오른다.’는 루스벨트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하셨는데, 중국에서 미국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는 것을 듣고 있자니 다소 낯설었다. 의외의 말을 들었다는 느낌.
 
선생님의 발표 내용은 조선족 중학생들의 독서 습관에 대한 내용이었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조선족 중학생들은 책을 즐겨 읽지 않으며 책을 즐겨 읽는 학생들마저도 무협소설, 순정소설 등의 흥미 위주 도서를 주로 읽고 그 마저도 점점 읽지 않는 추세라고 한다. 그 이유는 ‘과중한 승학 압력(우리로 치자면 대입 입시 공부의 무게!)’과 읽을 만한 책의 부족, 그리고 ‘인터넷, 영화, TV’ 등의 매체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들을 들 수 있다(우리와 상황이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김염화 선생님은 ‘열독 흥취를 일으키고 량호한 열독을 하도록 하기 위해(독서에 흥미를 갖고 의미있는 독서체험을 하도록 하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고안해서 지도하셨다. 그 방법은 독서 방법의 다양화(낭독, 자유독, 소조별 읽기, 지명독, 범독, 묵독) 그리고 영화를 독서해야할 작품과 연결짓기(박지원의 <양반전>을 북한의 영화와 연결짓는 사례), 작품 간의 비교와 토론하기, 그리고 인터넷의 매체 자료를 이용하기 등의 방법이었다.
 
발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선생님이 꾸준히 독서에 관심을 갖고 독서활동을 실천하고 있는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을 끌었던 것은 권장도서 목록. 학생들에게 읽기를 권하는 작품들이 우리 나라의 고전문학과 중국의 문학 작품 위주일 것이라 막연 짐작을 하고 있었다. 한데 우리 나라에서 흔히 서양 고전 명작이라고 하는 작품들, 예를 들면 <제인 에어>, <오만과 편견>, <파리의 노트르담 사원> 등과 같은 것들도 함께 제시한 것이 의외였다. 나는 지금까지 중국에서는 서구의 작품에 대해서 거리를 두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걸 보면 그렇지 않은 셈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정말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잘 모르는 것 같다.
 
또 한 가지 관심을 끌었던 것은 조선어문 교육 과정에서 사용하는 어휘들이 우리와 조금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르다는 것. 앞서 잠깐 말하기는 했지만, ‘열독 흥취(독서에 대한 흥미)’, ‘승학압력(성적 향상 부담)’, ‘어휘량장악(어휘력)’, ‘지식결구(공부에서 모자란 점)’, ‘모를 박는다(중점을 두었다)’ 등의 다른 어휘가 많아서 서로의 용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자면 발표 사이 사이 ‘청산유수처럼 말을 늘어놓으며, 얼음 위에 박을 밀듯 줄줄 내리 엮는다’는 표현이라든지, ‘골머리를 앓는다’는 식의 우리말 표현들을 자연스레 쓰는 것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김염화 선생님의 발표에서 얻은 시사점이 있다면 조선어문 교육과 남한의 교육이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공통의 화제’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통의 화제’는 조선시대와 일제시대의 문학 작품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박지원의 <양반전>, 김시습의 <이생규장전> 그리고 나도향의 <물레방아>, 김유정의 <동백꽃>, 계용묵의 <구두>, 피천득의 <엄마> 등의 작품이 김염화 선생님의 발표에서 거론된 작품들인데, 이런 공통의 작품들을 그간 어떻게 가르치고 있었는지를 서로 견주어보는 작업을 해본다면 조선어문 교육과 우리의 교육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7월 29일(여행 3일째, 행사 2일째)
 
행사 둘쨋날 일정은 한국측 주제 발표로 먼저 시작을 했다. 이번 행사에서 한국측에서는 두 명의 발표자가 나섰는데, 한 분은 배움의 공동체를 알리고 있는 박현숙 선생님이시고, 다른 한 분은 토론의 전사로 토론 교육을 알리고 있는 유동걸 선생님이다. 그 중 박현숙 선생님이 먼저 발표에 나섰다.
 
박현숙 선생님은 ‘배움의 공동체’를 널리 알리고 있는 장곡중학교 선생님이시다. <함께여는 국어교육>의 “임정아가 만난 사람”에 소개되기도 하셨고, 보통 사람이라면 한 가지도 하기 어려운 일들을 혼자서 씩씩하게 해내는 강철 여인이기도 하다. 철인 3종 경기 선수이자 배움의 공동체를 널리 알리는 국어교사이면서 민족춤을 추기도 하는 춤꾼이기도 한 박현숙 선생님. 서울과 경기도교육청이 중심이 되어 펼치고 있는 혁신학교 운동의 중심에 서 있는 박현숙 선생님은 조선어문 선생님들에게 ‘배움의 공동체’가 갖고 있는 교육적 철학에 대해 말씀을 들려주셨다.
 
 
◆ 29일 오전 한국측 주제 발표1 박현숙 - 배움의 공동체 철학과 운영 원리
 
 
1. 학습은 협동이지 경쟁이 아니다.
 
해외여행 나가서 입국신고서 쓸 때, 왜 옆 사람 것을 힐끔거리나? 그 사람은 잘 알 거라는 믿음은 어디서 온 것인가? 이건 본능이다. 본능적으로 인간은 자기가 잘 모르는 걸 대할 때, 협동하고자 한다. 시험을 보면 모두 문제를 아이들이 가린다. 왜 가리는가? 이건 본능에 반하는 행동이다. 우리는 그 본능과 반대로 행동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일제식 수업 상황에서는 본능적으로 협동하고자 하는 행동을 제지하고, 막는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우리는 뭐라고 하는가? 옆 사람에게 물어보지 말고 나한테 물어봐. 꼭 공부안하는 것이 옆 애들과 떠들어. 딴 사람 보면서 두리번두리번 거려. 이런 나의 눈이야. 그래서 내가 나한테 물어봐 이렇게 제지를 하면, 아이들은 그 순간부터 배움을 포기하고 배움에서 빠져나간다. 항상 우리의 수업은 이런 상황이다. 똑바로 앉아 뒤돌아보지 마 제대로 들어 나만 바라봐 이건 아침부터 집에 갈 때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듣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놀이 수업을 한다? 이건 아이들에게 미치라고 권하는 것이다.
 
2. 일제식 수업의 구조는 아이들을 억압한다.
 
움직이고 노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야 생명이 건강하게 잘 큰다. 그런데 일제식 수업의 구조는 그런 아이들의 생명력을 억압한다. 학교의 구조, 배움의 구조를 바꾸지 않은 상황에서 내 수업을 다르게 바꾸어 놓으면 아이들은 풍선 구멍처럼 그리로 쏠려 해방구로 만들어버린다. 한 교사가 혼자서 배움의 구조를 바꾸는 것은 어마어마한 개인의 고생과 노력을 치러야 가능하다. 그렇지만 학교 전체가 바뀌면 어렵지 않다. 모든 교사가 조금씩만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다. 배움의 공동체는 수업에 대한 철학, 학교 개혁에 대한 비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학교를 배움의 공동체로 만들자.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학교 교육이 하는 일을 사람들의 연대를 기초로 서로 배우고 성장하며 연대하는 공공적인 공간으로 재구축하는 것. 학교의 본질적인 기능으로 되돌아가자. 모든 아이들의 배울 권리와 질 높은 배움을 보장하라. 한 명도 배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공공성, 민주주의, 탁월성 이 세 가지 원리가 배움의 기초 원리다. 특별한 수업 모델은 없다. 이 세 가지 원리가 반영되는 수업을 스스로 설계하면 된다.
 
3. 모르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라
 
소설에서 갈등을 가르칠 때, 내가 갈등의 종류를 막 설명하고, 활동지를 나누어주면 아이들이 뭐라고 하는가? ‘그런데 갈등이 뭐야?’ 이렇게 친구들에게 묻는다. ‘갈등’ 자체는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갈등의 종류’를 가르치고 있는데 아이들은 ‘갈등’ 자체가 뭔지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순간 어떤 아이가 말한다. ‘갈등이 뭐긴, 자장면 먹을까, 짬뽕 먹을까야!’
 
누군가 대답을 하는 순간 교실 여기저기서 아 하는 탄성이 나온다! 이건 배움에서 빠져나가려는 아이들이 더 있었다는 것. 왜 교사는 수업을 하면서 ‘아!’하는 소리를 못 듣는가? 교실에서 아이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배움을 주는 순간 ‘아!’하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게 배움이 일어나는 소리이다. 이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면 잘못 가르쳐 온 것이다.
 
정말 모르는 아이는 교사가 못 가르친다. 그런데 정말 모르는 아이보다 조금 나은 아이는 그 아이를 가르칠 수 있다. 바로 그 수준보다 조금 높기 때문이다. 갈등을 이렇게 훌륭하게 가르칠 수 있나? 자기가 이해한 방식으로 설명을 하니까 같은 수준의 아이들이 알아듣고 배움을 일으키게 된다. 그 배움이 질 높은 배움이다.
우리는 책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시를 가르치면 마음의 보배를 얻을 수 있고, 소설을 가르치면 세상을 보는 눈,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는 감식안을 기를 수 있기를 바란다. 그걸 추구하는 것이 ‘질 높은 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내가 배운 것을, 자기가 알게 된 사실을 자기의 언어로 말하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걸 내가 안 방식으로 말하는 것.
 
‘호수’라는 시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해봐라.
- ‘야동’을 보는 나의 얼굴이야 나의 두 손으로 폭 가릴 수 있지만 야동을 보고 싶은 마음 호수처럼 넓고 깊으니 야동을 보고 싶은 그 마음 꼭 눈 감을 밖에
 
4. 귓속말은 마법이다.
 
우리는 떠드는 아이가 있을 때, 교실 앞에 서서 소리를 지른다. 그럼 그 아이는 사과하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다시 소리를 지른다. 소리는 소리를 부른다. 하지만 교사가 다가가서 귓속말로 하면, ‘죄송하다’는 말을 한다. 비폭력 대화는 별 것이 아니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학생 한 명 한 명을 존중하는 수업을 하려면 교사의 언어도 재구성해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걸자. 학교에서 그것이 가능하려면? 쪼그려 앉아라. 교사가 쪼그려 앉아서 가르쳐주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 학생 개개인에 대한 소중함이 되살아 난다.
 
5. 잘 듣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아이들과 처음 만나는 3월에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바로 ‘경청’이다. 수업 참관의 초점은 학생들에게 가 있다. 교사가 어떻게 가르치는가를 관찰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어떻게 배움을 일으키는가를 살핀다. 그리고 교사의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서는 절대로 비판, 조언, 설명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새롭게 배운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한다. 세상에 가르치는 방법은 백 가지, 천 가지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업을 하는 선생님의 행위에서 내가 의미를 부여하고 배울 수 있는 것만 찾으면 된다. 가치를 스스로 부여하라.
 
6. 존중받는 수업, 행복한 수업, 배움이 일어나는 수업
 
교사가 수업을 소중히 여기면 아이들도 배움을 소중히 여긴다. 교사가 교실을 걸어다닐 때 발을 들고 발걸음 소리를 줄이면, 아이들도 목소리를 낮춘다. 교사가 존중을 하면 아이들도 존중을 한다. 공허한 눈빛이 사라지게 하자. 즐겁고 재미있는 표정과 눈빛으로 수업을 하는 모습을 만들자. 수업을 하면서 ‘행복’하다. 좋은 수업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아이들 속에서 즐거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배움이 일어나는 그 기쁨. 배움의 공동체 안에 이 모든 것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 29일 오후 조선어문 선생님들의 발표2 사회(배성완)
 
1. 조선어문 과당에서 다양한 놀이의 침투(심양 전련화) - 토론자 김태철
2. 독서와 함께 하는 조선어문 수업(심양 로춘애) - 토론자 권정혜
3. 학생들의 독서에 존재하는 문제 및 해결책(류하 리준실) - 토론자 권정혜
 
 
오전 발표가 끝난 다음 오후에는 세 분의 조선어문 선생님이 발표를 하셨다. 그 중에 리준실 선생님의 발표를 들으며 느낀 것들을 간단히 옮겨본다. 리준실 선생님은 그 자신이 자녀를 이번에 대학에 보낸 학부모로서 자녀와의 대화에서 느낀 절실함을 원고 속에 담아놓았다.
 
중국의 소수민족은 대학교 입시를 치를 때에 자기 민족의 언어로 시험을 볼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모든 민족이 그런 것은 아니고 자기 언어를 가지고 있는 몇몇 민족에 한정되는 것이라는데 조선족은 조선어와 한글이라는 언어, 문자를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소수민족어로 시험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소수민족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가산점 제도 같은 것도 있어서 조선족은 한족에 비해 대학 진학이 한결 수월하다.
 
거기다가 조선어를 많이 선택하고 응시하라는 차원에서 한어 시험보다 조선어 시험의 난이도 자체도 낮다고 한다. 이런 이득 때문에 조선족 학생들은 조선어 시험에 응시를 많이 하는데, 이것이 양날의 칼이다. 당장 대학 진학에 유리하고, 학생들이 선호하고 있지만, 난이도가 낮고 각종 이득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조선어 응시를 하는 학생들의 조선어 실력이 나날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조선어 실력이 이렇게 낮은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단순히 대입시험의 문제점만 지적하는 것으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 리준실 선생님은 그 문제의 원인을 조선족 학생들의 독서 능력 부족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1) 독서량의 부족
2) 독서환경의 열악함(조선어, 한국어로 된 책이 거의 없다)
3) 한어도서를 읽을 능력의 부족
4) 조선어, 한어의 병행학습으로 인한 학습부담
5) 이중언어 교육방법의 어려움
 
등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원 자신들이 먼저 독서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며 독서 환경의 개선에 교사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시는 것으로 발표를 마무리 지으셨다. 조선어로 된 책을 접하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겠지만, 최근 한류 열풍과 한국과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데에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신문 읽기. 이제는 남한의 신문들을 중국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신문의 칼럼이라든지 기사를 읽기 자료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실제로 조선어문 선생님들이 우리 나라의 인터넷 포털에 접속을 하셔서 여러 글들을 읽기 자료로 가져와 사용하신다고 한다.
 
그렇지만 결국은 ‘단행본’으로 되어 있는 좋은 책들을 접하기 어렵다는 것은 여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조선어로 문화활동을 하는 문화일군(작가들을 지칭하는 듯)들이 한정되어 있고, 학생들에게 읽힐 수 있는 좋은 작품의 수도 적다. 남한의 단행본들이 중국에서 유통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조선족 학생들이 한국어로 된 좋은 책들을 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할 듯 하다.
 
 
◆ 29일 오후 조선어문 선생님들의 발표3 사회(이성수)
 
1. 학생들에게 낭독흥취를 갖게 하기 위하여(단동 김일순) - 토론자 설지형
2. 창신력을 배양하기 위하여(무순시 신화조선족소학교 리명희) - 토론자 설지형
3. 초중학생 조선어문 과외열독 현황 및 대책(할빈시 교육연구원 유순복) - 토론자 강양희
 
 
원래 일정으로는 내일 오후로 계획되어 있던 조선어문 선생님들의 발표가 조정이 되어 30일 오후에 발표를 모두 마치는 것으로 바뀌었다. 연이은 발표를 듣느라 몸이 지치기는 했지만, 자리를 비우지 않고 열심히 발표를 듣고 계시는 조선어문 선생님들의 모습 때문에 한눈을 팔지도 못했다. 이어진 세 분 선생님의 발표 중에서 김일순 선생님의 발표 내용을 옮겨 정리해본다.
 
나는 목소리가 크다. 내가 수업을 하면 다른 반에서 그 반의 강좌가 안 들린다고 항의할 정도다. 지금까지는 이게 좋은 줄 알았다. 선생님은 목소리가 크니까 아이들이 잠을 못자지 않느냐! 그런데 그게 좋은 것이 아닌 것을 이제야 알겠다. 아들이 “엄마 목이 아프지 않아요?” 한다. 그래서 엄마 걱정인 줄 알았더니, “귀가 아프다.”는 하소연이다. 내가 지금까지 내 말만 하고 살지는 않았는지 새삼 되돌아 보았다.
 
지난 여름 통화에서 열린 6회 행사에서 한국 선생님들의 강연을 잘 들었다. 그리고 지난 겨울 한국에 직접 찾아가서 여러 선생님들을 만나 뵈었다. 많이 배우고 느꼈다. 이번 학기부터 모둠 학습을 진행했다. 배운 것들을 많이 써보면서 배운다.
 
1. 어휘 학습에 힘써야 한다.
- 학생들이 학교에서 조선어를 많이 쓰지 않는 까닭은 한어로 번역해야 이해가 되는 상황 때문이다. 조선어를 더 많이 쓰게 하려면 반드시 조선어 어휘에 익숙해져야 한다. 조선어 어휘에 힘주어 가르친 이유다. 과문에 나오는 어휘를 꼭 필기하게 한 다음 어휘 낭독을 시킨다. 어휘 풀이집에 나오는 단어들과 반드시 장학해야 할 단어들 이런 것들을 표기하고, 그 단어의 뜻을 모둠학습을 통해서 해결한다. 낭독의 기본 절차다.
 
2. 교원의 시범독이 중요하다.
- 내가 있는 학교는 조선족학교인데도 수학, 물리, 화학 등의 과목은 무조건 한어로 강의를 한다. 그 이외 과목도 40% 이상이 한어로 수업을 진행한다. 저학년으로 갈수록 학생들은 조선어를 잘 모른다. 조선어를 알고 있더라도 유창하지 않다.
- 조선어, 한어, 영어 중에서 조선어 말하기 능력이 가장 떨어진다. 한어는 늘 쓰는 일상 생활어이고, 영어는 당장 대학교 입시 성적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그 이후에도 돈 많이 버는 일을 하려면 꼭 필요하니까 열심히 한다.
- 조선어는 사용할 기회도 많지 않고, 영어만큼 중요한 과목이 아니니까 무관심해진다. 조선족이지만 조선어를 배우려는 흥취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꼭 필요한 것이 교사의 시범독이다. 교사가 낭랑하고 거침없게 낭독을 하는 시범을 보여주어야 비로소 학생들이 조선어를 배우려는 흥취를 일으킬 것이다.
 
3. 조선어 강의를 조선족 학교에서 전면 시행하기란 어렵다.
- 조선족 학교에서 모든 과목을 조선어로 강의한다면 학교의 설립 취지에는 맞겠지만,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한 다음에 문제가 생긴다. 조선어 강의에 익숙해지면 대학교에 가서 한어로 강의하는 것에 적응하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다. 특히 이공 계열의 경우가 그렇다. 그런 현실적인 어려움을 고려해서 한어 강의도 있는 것이다.
 
4. 조선어문에서 랑독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간 조선어문 교육에서 랑독은 그렇게 중요하게 하지 않았다. 랑독 교육을 하라고 하긴 했어도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거나 지도하는 방안을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북조선에서는 랑독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북조선에서는 글을 문장 단위로 쪼개어 4개 문장별 읽기를 한다.
 
1) 선생님이 읽는 대로 따라 읽는다.
2) 문장별 읽기를 한다.
3) 네 문장별 읽기를 한다.
4) 내용별(내용문단별) 읽기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북조선 사람들은 말을 잘한다. 아마도 그것이 교육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 조선족 학교의 교육은 남한의 교과서 내용을 많이 받아들였는데, 아쉬운 것이 있다. 첫째 저학년 단위에서 ‘통글’ 읽기를 하는 것이 문제다. 낱개 단위 글자 단위 설명이 없다. 둘째 ‘랑독’에 대한 지도 내용이 없다. 남한은 한국어가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랑독’에 대한 관심이나 주의가 크지 않은 것 같다. 조선어 교육에서는 ‘랑독’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학교에서는 전교 랑독 랑송 대회를 열어 소설을 읽거나, 시를 읊거나 하는 활동을 학생들이 직접 발표하도록 지도했다. 앞으로도 ‘랑독’ 교육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는 수업을 많이 계발해야 한다.
 
 
7월 30일(행사 3일째)
 
◆ 30일 오전 한국측 주제 발표2 유동걸 - <아큐정전>으로 하는 토론 활동
 
 
이 날 오전 강의는 우리에게도 ‘토론의 전사’로 널리 알려진 유동걸 선생님의 ‘토론 활동’이다. 토론을 수업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우리도 아직 익숙지 않은 것이라 이 강의는 한국에서 오신 선생님들이나 조선어문 선생님들이나 모두 처음 배우는 학생들처럼 조금 긴장을 했다.
 
조금 특이한 것은 토론 활동의 주제를 ‘아큐정전’으로 고른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한 두 집단이 함께 토론을 하자니 서로가 잘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어야 하는데, 그걸 중국의 작가 루쉰이 쓴 ‘아큐정전’으로 고른 것. 참가하는 양측에게 모두 미리 읽어오라는 공지를 내보냈고, 이 날은 ‘아큐정전’을 이야깃감 삼아 소설을 토론수업으로 어떻게 진행하는가 하는 것을 함께 경험해볼 수 있었다.
 
토론 방법은 <아큐정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유동걸 선생님이 던진 질문에 대해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었는데, 표현 방법이 재미있다. 벽에 게시된 질문을 보며 스티커를 붙이거나, 간단한 메모를 포스트 잇에 써서 붙이거나 하는 방식이어서 부담없이 자기 생각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이어진 활동에서는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그걸 정리해서 발표하는 것이 과제로 주어졌는데, 조선어문 선생님들은 마치 본인이 정말 학생들이 된 것처럼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발표를 하셔서 자리가 한층 더 활기차게 진행될 수 있었다.
 
<아큐정전>을 가지고 하는 토론 활동을 마치고 나서는 토론의 기본적인 내용을 설명해주는 동영상을 보았다. 그 중 하나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과 같이 토론을 통해 성장해온 사람들과 토론을 주된 교육방식으로 삼고 있는 여러 학교의 모습을 소개하는 것이었는데, 조선어문 선생님들은 그 동영상을 무척 관심 갖고 지켜보았다.
 
지금까지의 내 생각으로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토론, 토의와 같은 활동이 매우 강조되었을 것 같은데 막상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유동걸 선생님의 수업은 나처럼 발표, 토론 수업을 잘 안 하는 사람들이나 조선어문 선생님들 모두에게 큰 자극이 된 수업이었다. 유동걸 선생님의 말씀 중에 기억나는 것들을 몇 가지 옮겨 본다.
 
1. 토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삶을 다루는 토론과 논리적 대립을 다루는 토론이다. 삶을 다루는 토론은 ‘경험’이 중심이 된다. 자신의 경험을 주위 사람들과 나누고 서로의 다른 경험을 미루어 느끼면 된다. 논리적 대립을 다루는 토론은 ‘논거’가 중심이 된다. 우리는 이 점을 놓치고 있다. 논리적 대립을 다루는 토론에서 ‘경험’이 중심에 서면 토론은 진행될 수 없다. MB를 보라. ‘내가 해봐서 아는데’의 위험성을 떠올려 보라. 논리적 토론에서 ‘경험’은 ‘독’이다.
 
2. 논리적 토론은 승, 패를 가른다. 이기는 것은 좋은 것이고 지는 것은 안 좋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잘 지는 데에서 더 많이 배울 수 있다. 잘 지는 것. 이것이 토론 수업의 목표다.
 
3. 강자는 토론하지 않는다. 강자는 상대방을 ‘힘’으로 제압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약자는 토론하는 것에 기댈 수밖에 없다. ‘힘’으로 이기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토론’으로 상대를 이겨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왜 늘 ‘토론합시다’하고 외쳤을까? 그것은 그가 그 이전의 다른 대통령에 비해 약자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강자는 토론할 필요가 없는가?
 
4. 그렇지 않다. 진정한 강자는 토론하고 소통한다. 우리 나라에서 소통을 제일 잘 하는 사람은 박원순 변호사다. 늘 흘러다닌다. 흘러다니며 새로운 소통의 공간을 마련한다. 그런 의미에서 토론이란 씨앗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생각을 자꾸자꾸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새로운 생각을 보여주느냐? 찬반 토론에서 어느 쪽이 먼저 발언을 시작하는지 생각해보자.
 
5. 찬반 토론은 ‘찬성’부터 시작한다. 왜? 토론은 ‘기존 세계에 대한 변화’를 꿈꾸는 것이다. 그래서 토론하자는 것은 변화하자는 것이다. 변화를 주장하는 찬성 측이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고 새로운 세계의 이야기를, 기존 세계의 변화에 대한 꿈을 펼쳐보여야 한다. 이것이 토론의 진정한 존재 이유이자, 우리가 토론을 통해 학생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오후 일정은 ‘민속촌’이라고 하는 시외 외곽에 있는 농장을 방문하고 거기서 저녁을 먹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민속촌’이라고 해서 우리 나라의 ‘민속촌’을 생각하고 소수민족이나 조선족의 생활양식을 재현한 일종의 공원 같은 곳인가 하고 생각을 했다. 한데 심양 시내에서 버스로 1시간 20분 정도 떨어진 시 외곽의 농장에 막상 가보니 조선족이 중심이 되어 친환경 농산물과 된장과 같은 가공물을 생산하는 협동조합 농장이었다. 우리나라의 새마을 운동 시범사업 마을처럼 농촌 개발을 위해 꾸려진 곳이라고 한다.
 
‘민속촌’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농장 한 켠에 작게 조선족의 의상과 악기 같은 것들을 전시해놓은 공간 때문인 것 같았다. 우리는 농장 관리인 되시는 분과 함께 농장을 한 바퀴 돌면서 간단히 설명을 듣고, 빈 창고 건물 같은 곳에 모여서 윷판을 벌였다. 각 성 대표들과 한국의 참가자들까지 모두 네 팀이 나누어서 윷놀이를 했는데 역시 윷놀이는 떠들썩하게 소리를 지르며 하는 것이 제 맛인가 보다. 윷놀이가 뭐가 재미있나 싶었던 마음으로 시작을 했는데, 한 번 두 번 윷을 던질수록 주위의 들썩이는 기운이 윷판을 아주 흥겹게 만들었다. 물고 물리는 추격전과 엎치락뒤치락 가쁜 경주를 한 끝에 요녕성 팀이 최종 우승을 했고, 그 흥을 그대로 이어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녁 식사는 야외 식당에 차려져 있었는데 노래방 시설이 함께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저녁 자리에는 농장에서 직접 빚은 막걸리를 준다 하기에 잔뜩 기대를 했는데, 중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서 만들었기에 좀 달고 우리 입에 잘 맞지 않았다.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농장에서 자란 여러 쌈채소를 푸짐하게 줘서 그것과 함께 맛있게 저녁 식사를 했다.
 
우리 민족이 흥이 많고 가무를 즐기는 민족이라는 건 국경을 넘어서도 그대로인 듯 하다. 식사를 하면서도 노래와 술을 곁들이는 것이 조선족의 문화라고 하더니 이 날도 저녁을 먹으며 술이 한 순배 돌고 나자 흥이 오른 선생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나서서 노래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얼떨결에 마이크를 잡게 된 우리는 진도아리랑, 개똥벌레 같은 민요나 포크송을 부르며 간단히 할 수 있는 율동을 했다.
 
식사를 했던 야외 자리가 넓은지라 한 두 사람이 노래를 하면 여러 사람이 나와 춤을 추기 시작하다가 아예 춤판이 벌어졌다. 강양희 선생님이 개똥벌레 율동을 의자에 올라가 하니 모두가 그걸 따라하고, 또 이런저런 노래에 맞춰서 포크 댄스를 추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행사를 주최한 코리아언어문화교육센터의 유병수 선생님이 봉산탈춤을 선보이고 나 역시 대학 때 배운 고성오광대 춤을 한 자락 추고 마지막으로 박현숙 선생님의 조선춤 춤사위까지 한판 춤판을 벌였다. 급기야는 아예 장구를 가지고 와서 휘모리, 자진모리, 굿거리 장단 배우기도 하는 그야말로 난장이 벌어진 시간이었다.
 
조선족 선생님들은 그런 놀이를 익히는 데에 매우 열심이었다. 술자리를 모두 끝내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휘모리, 자진모리, 굿거리를 배운다고 열심히 소리를 내면서 따라하셔서 깜짝 놀랐다. 어쩌면 이렇게 배우려는 열의가 높은 것일까! 중국에서 소수 민족을 보호한다고 하며 조선족을 조선족 자치구에서 지내게 하지만 막상 교육 내용으로 조선족의 특색을 담아놓았던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부른 ‘진도 아리랑’이나 ‘너영나영’과 같은 민요들을 참 신나게 따라 부르시며 그런 것들을 제발 가르쳐 달라하셨다. 학생들에게 조선족의 전통 놀이와 음악을 소개해주려고 해도 아는 것이 없다는 하소연을 하시기에 새삼 우리가 함께 나누어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한 저녁이었다.
 
 
7월 31일(행사 4일째) - 행사 마지막 날
 
오늘은 세미나 마지막 날, 종합 토론이 있는 날이다. 그 동안 발표한 내용과 평소 서로의 교육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모둠별로 앉아 나누는 시간. 전체 발표가 진행될 때에는 궁금한 것들이 있어도 직접 물어보지 못했던 분들이 계셔서 그걸 모둠 시간으로 해서 풀어가는 것. 조선족 선생님들과 우리 일행들이 크게 4개 모둠으로 나뉘어 모둠 토론 시간을 갖고 그걸 종합 발표하기로 했다.
 
내가 속한 모둠에는 8명의 선생님이 함께 했다. 한 시간 반 가량 진행한 모둠 토론에서 나온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조선족 교육의 현주소
 
조선족 교육이 처한 제일 큰 문제는 학생수의 감소이다. 하얼빈 시의 경우 시내에 10여개의 민족학교가 있었던 때도 있지만, 지금 현재는 1개로 줄어들었고, 그나마 한 학년에 2개 학급(한 학급에 25명 내외)로 학생수가 매우 적다. 학생수는 민족학교가 유지되느냐 마느냐 하는 데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이지만, 뾰죽하게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게 고민이다.
 
한어, 조선어를 배우고 제2외국어로 예전에는 일본어를 배웠으나 지금은 영어를 배우고 있다. 결국 조선어 학생들은 한어, 조선어, 영어 이렇게 세 가지 언어를 배우는 셈인데, 세 가지 언어에 능통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언어를 모두 겉핥기 식으로 배우게 되는 문제가 있다. 한국의 새로운 교수기법을 습득해서 조선어 교육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고자 애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2. 학술회에서 조선어 교사가 바라는 점
 
여러 내용을 다양하게 듣는 것보다는 한 가지 주제를 집중해서 공부하고 싶다. 한 시간 정도씩의 발표를 들으면 정확하게 이해가 잘 안되고 우리 것으로 만들기가 어렵다. 2010년에 김명희 선생님과 배창완 선생님이 반나절 정도씩 강의를 진행했었는데 그 때 배운 것이 많다.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강의를 해줄 수 있게 프로그램을 짜면 좋겠다. 서로 배우고 가르칠 것이 있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 조선어 교사들이 더 배우고 싶은 것이 많다. 한국에서 오신 선생님들의 강의를 늘이자.
 
3. 학술회에서 배운 점
 
한국 선생님들의 발표 중에서 제일 마음에 와 닿는 것이 모둠 학습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서로 토론하고 선생님과 질문을 주고 받는 모습. 그걸 통해서 학습목표에 스스로 다가서는 걸 보고 그게 옳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교사의 강의로만 했는데,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해결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로구나 하는 걸 알게 되어서 좋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모른다. 구체적인 한 과당 수업이 궁금하다. 한 시간 한 시간에 과문을 어떻게 떼는지 45분간 진행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걸 듣고 다시 학교에 돌아가면 어떻게 다른 교사들에게 전달을 하고, 내가 수업을 어찌 설계를 할지 그게 막막하다. 우리는 수필을 하나 가르친다고 하면, 1차시에 2차시에 무얼 어찌한다. 이걸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나가려면 막막하다. 또 한 개 과문을 배우면서 학생들에게 무슨 학습지를 사용하는지, 이런 걸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질문하는 것과 다른 질문을 던지는 것 같은데, 그 질문들의 차이를 직접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동안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걸 직접 배우고 해보게 되어 좋았다. 토론 수업을 진행하신 유동걸 선생님의 강연과 관련된 책들을 직접 봤으면 좋겠다. 그 이외에도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 장면 같은 동영상 자료가 참 좋았다. 이런 동영상 자료를 구하기 힘든데 그런 것들을 한국에서 제공해준다면 좋겠다. 덧붙여 이번에 동영상 촬영을 한 것을 다시 CD로 받아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학교에 돌아가면 이것의 내용을 학교에 전달 연수를 해야하는데, 그걸 말로만 하는 것보다 활동 영상을 직접 보면서 전달을 하면 훨씬 쉽게 전달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4. 어려웠던 점
 
강의를 할 때 좋은 정보가 정말 많았는데, 종종 서로 다른 용어(특히 영어)를 쓸 때 그게 무슨 말인가 한참 생각을 하다가 강의를 놓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영어가 아니더라도 낯선 단어를 쓰는 경우가 많아 좀 천천히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 우리는 학교 다닐 적에 영어를 배우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 선생님들이 간단한 영어라고 생각해서 쓰는 것이라도 전혀 알 수가 없다. 알고 싶은데 못 알아듣는 단어들이 중간에 걸려서 참 아쉽고 답답했다.
 
5. 앞으로 더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1) 시수업 - 지난 번 배창환 선생님의 시수업이 참 좋았다. 시수업을 다시 듣고 싶은 생각이 든다. 시를 어떻게 가르치느냐 하는 걸 배워보면 좋겠다. 선생님들이 직접 학생이 되어 시수업을 배워보고 싶다. 아이들이 시수업에 시가 이렇게 재미있구나 좋은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
 
2) 학습지 제작과 활용법 - 한국에서의 국어와 중국에서의 조선어는 분명 다른 위치에 있다. 학생들의 수준과 흥미도 다르다. 한국에서 온 선생님들에게 그걸 그대로 배워가지고 학생들에게 하려면 직접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교과서에 한국 교과서의 내용이 많이 들어왔다. 그러니 겹치는 작품들을 가지고 실제 수업하는 방법을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학습지를 어떻게 만들어서 사용하는지 그걸 알고 싶다. 그리고 시험문제가 어떨지 궁금하다. 한국의 시험문제를 살펴보니까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문에서 주제, 갈래 이런 것들을 다 가르치고 있는데, 한 과문을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까지 알게 하자는 것인지 그게 궁금하다.
 
3) 수업 태도와 자세, 학생들의 품행 - 한국의 학생들은 대범하고 자기 생각을 잘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런 것은 평소 수업에서 어떻게 지도했기에 가능한 것인지 궁금하다. 중국 학생들은 이론과 실제가 분리되어 있는데, 한국 학생들은 언행이 일치되는 것 같다. 그래서 수업에서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는지 그런 것이 궁금하다.
 
6. 그 밖에 아쉬운 점
 
행사 이틀째 저녁 시간에 야외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 놀이 활동을 배운 것이 좋았다. 진도아리랑이라든지 민속춤 같은 것들을 쉽게 접하기 어려웠는데 그것을 함께 어울려 해보니 좋았다. 조선족 학생들에게 조선족의 전통 민속놀이를 가르치고 싶어도 아는 것이 많지 않아서 어렵다. 그런 놀이 활동을 배울 수 있는 시간도 함께 가지면 좋겠다.
 
한 시간 반 동안의 모둠별 토론이 끝난 다음에는 전체 종합 토론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예정했던 시간보다 모둠별 토론이 오래 진행되어 전체 종합 토론은 생략하고 참가자 대표들의 전체 총평만을 하기로 했다. 조선어문 선생님들은 요녕성, 흑룡강성, 길림성 이렇게 각 성별로 대표 분들이 발표를 하셨고, 우리 쪽에서는 정 경우 선생님이 대표 발표를 하셨다.
 
<<종합 토론>>
 
1. 조선족 선생님들 성(省)별로 대표 소감 말씀하기
 
▶ 료녕성(김일순 선생님) - 아쉬웠던 점. 구체적인 과문을 가지고 수업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측은 적게 발표하고, 한국 선생님들이 많이 발표하면 좋겠다. 율동 같은 것들도 계속 했으면 좋겠다. 한국에 가서도 실제 수업을 참관하면 좋겠다. 가정이 있는 아줌마이지만 집으로 돌아가기 싫은 생각이 든다!!
 
▶ 길림성(서명순 선생님) - 한국 선생님들의 수업을 참관하고 싶다. 선생님들의 동영상을 본다면 도움이 되겠다. 한국과 중국의 동일한 과문을 가지고 수업을 실제 해보는 것이 좋겠다. 연길의 조선어교육에서 수요되는 주제를 이야기하자면, 박현숙 선생님과 유동걸 선생님의 강의는 효과적인 조선어 교수책략 이런 것을 고민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좋다. 교수 현장에 필요한 교수책략, 교수방법 이런 것이 절실하다.
 
▶ 흑룡강성(김선녀 선생님) - 우리의 만남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나 소중한 만남이었다. 즐겁게 배우는 놀이수업, 배움의 공동체 원리 이런 것을 가지고 협동학습을 조직해보고, 토론수업을 조직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학생들에게 민족문화를 배우자는 불길이 일어나게 열심히 노력하겠다. ‘열심히 해야 겠다.’ 이런 반성도 했다. 한국에서 오신 선생님들 정말 고맙다.
 
2. 우리 대표 소감 정리
 
▶ 정경우 - 종합토론을 종합해보면, 실제로 수업을 하는 모습, 수업 과정을 서로 나누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지 않느냐 하는 이야기다. 평가회를 할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인데, 아직까지 현실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기필코 이걸 성사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족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배우려는 생각을 하고 계신다. 하지만, 조선어문 교육에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점도 분명히 있다. 낭독교육 같은 것이 그렇다. 우리 나라에서는 거의 방치되어 있는 시낭독 학습 같은 것을 체계적으로 지도하는 것, 이런 것은 배워야 할 점이다.
중국의 조선어교재가 궁금하다. 조선족 선생님들도 궁금하실 거 같다. 서로의 교과서를 살펴보면 배울 게 많을 것 같다. 아무래도 우리는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조선의 문화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한다. 교과서 교류를 통해서 서로를 알아가면 좋겠다. 어느 한 쪽이 일방으로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워야 할 것 같다. 미리 발표문을 받아서 토론 발제문까지 준비하면서 준비를 하기는 했지만, 질의 응답이 충분하지 않았던 생각이 든다. 한 가지 주제를 하더라도 좀더 충분한 토의와 토론이 뒤따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공식 일정을 마무리했다.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점심 식사를 함께 하며 그간 쌓인 정을 풀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조선족 선생님들은 정과 흥이 많아서 그 짧은 시간을 함께 했었는데도 정이 담뿍 들어 우리를 떠나보내는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학교 측에서 준비한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한 우리는 공항에서 비행기가 늦게 출발을 해서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한국으로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세 시간 정도를 기다려 겨우 비행기를 탔는데 인천 공항에 도착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지금까지 조선족과 우리가 만나온 관계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 지척인 거리를 두고 오랫동안 기다림으로 긴 세월을 보낸 사이. 이제 만남의 물꼬를 텄지만 아직 서로가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사이.
 
 
마무리 - 우리는 왜 만나야 하는지
 
여름에 다녀온 다음 바로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여름 보충 수업을 다 끝내고 쓰지, 좀더 여유가 생기면 쓰지 하다가 결국 이렇게 한 해를 넘긴 다음에야 씁니다. 쓰려니 기억이 아물가물해서 진작에 하지 않은 저를 탓하며 겨우겨우 썼습니다. 왜 이리 미루고 미루다 글을 쓰게 되었는지 굳이 변명을 하자면 좀더 잘 된 보고서를 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다녀오고 나서 바로 써버리면 그저 다녀왔다는 기록만 남을 뿐 그 기록의 의미까지 짚어볼 수가 없을 듯 했습니다. 이게 변명입니다.
 
하지만 기록은 기록대로 먼저 남기고 찬찬히 살펴보아도 된다는 걸 이제야 깨닫습니다. 마음속에서 ‘보고서 써야지’ 하는 부담만 가득 가지고 있으면서 어떻게 보고서의 물꼬를 터서 글을 쓸까 궁리만 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영화 <황해>를 봤습니다.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영화는 한없이 어둡고 침침합니다. 영화 <황해>를 보는 일은 우리 안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과 비슷합니다. 저마다 갖고 있을, 그러나 애써 눈감고 모르는 척 하고 있는 자기 안의 어두움.
 
'92년 한중 수교 이후 지금까지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조선족이란 이름으로 우리 곁에 온 사람들. 우리와 핏줄을 나눈 겨레라고 맞아들이기보다는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존재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 영화 <황해> 속의 조선족은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는 아줌마’이거나,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흉폭한 폭력배’일 뿐입니다. 결코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하정우가 연기한 주인공은 우리의 그런 시선이 한데 모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편하게 처리하지 못할 일을 ‘돈으로 맡기고’ 그런 일들이 정리되고 나면 ‘너쯤이야 있건 없건’이라는 생각으로 무시하며 그들이 어디에선가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온 생활인이라는 사실을 아예 떠올리지 못합니다.
 
조선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과 만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조선어문 교사들과의 만남은 우리 바깥에 있는 또다른 우리를 만나는 것입니다.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또다른 우리, 그것은 북한의 조선어문 교사일 수 있고, 일본의 재일조선인을 가르치는 교사일 수도 있고, 중국의 조선족을 가르치는 교사일 수도 있으며 이 세상 어딘가에서 조선어, 한국어를 가르치는 누군가일 수 있습니다.
 
그 누군가를 만나 한국어가 또는 조선어가 이루어놓은 성취를 확인하는 자리. 조선어문 교사와의 만남은 그래서 한국어의 또다른 가능성을 만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올해는 우리 모임의 더 많은 선생님들과 함께 그 자리를 찾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여러 선생님들께서 동참하시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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