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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산더미 같은 선물 속에 파묻힌 희선이
조회 105
회원이미지김은형
2008-04-29 16:51:51
       
 

422 산더미 같은 선물 속에 파묻힌 희선이

 아이들의 논술을 읽다가 우리 반 희선이의 논술을 보고 깜짝 놀랐다. 희선이는 늘 명랑하고 발랄하다. 목소리가 크고 톤이 높으며 주위에 언제나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보였다. 희선이는 학급 일이면 무엇이든 나서서 열심히 하고, 선도부나 급식 자원 봉사도 하고 있다.

 급식 도우미를 어찌나 열심히 하는지 시끄럽고 큰 식당에 들어설 때면 새치기 하는 아이들을 야단치고 쫒는 희선이의 크고 높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것을 듣곤 했다. 희선이는 친구들끼리 친해지기 위해 몰래 친절을 베푸는  마니또 놀이를 하자고 주창하여 실행하고 있고, 고충처리 위원으로서 장기결석중인 중진이에게 롤링페이퍼를 만드는 일도 앞장서고, 중진이네 집에 가자고 하면 제일 먼저 손을 든다. 희선이는 우리 반의 깍두기요, 분위기 메이커인 셈이다.

 그런데 ‘원미동 사람들’을 읽고 쓴 희선이의 독서 논술에는 우리가 몰랐던 희선이만의 아픔이 담겨 있었다.


 (전략)원미동 시인 ‘몽달씨를 보면서 난 불쌍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지도  그 사람을 믿지도, 내 마음을 말하지도 않는, 사랑받지 않는 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중략)몽달씨는 이유 없이 사회의 폭행을 당하고, 김 반장은 걱정하는 척, 비열한 모습을 보인다. 경옥이가 그런 김 반장을 나쁜 사람이라고 몽달씨에게 말해주지만 몽달씨는 대꾸하지 않고, 대신 슬픈 시를 읽어주는데 그의 외로움과 슬픔이 담겨 있어 내 마음을 젖게 하였다.

 몽달씨는 김반장의 그런 모습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묵묵히 김반장의 형제 수퍼 허드렛일을 도와준다.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몽달씨는, 나와 같다. 나는 남에게 도움을 주지만, 내가 정작 받고 싶을 때는 남들에게 얘기하지 못한다. 거절할까봐 마음 졸이며 무조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갖혀 산다. 위원회별로 담임선생님과 상담하는 시간에, 여러 막에 갖혀 사는 나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내 생각을 아무도 읽지 못한 듯했다.

 학교에서 밝고 적극적인 나지만, 집에서는 밤늦게 들어와 얘기조차 나누지 못하는 가족, 학원에도 다니지 않아 항상 외로운 나.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을 즐거워했다. 정작 내 마음은 표현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지금 내 주위 사람들은 돈 벌고, 공부하느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다. 서로에게 정을 주고 관심 가져주는 삶을 살고 싶은 것이 내 목표다. (하략)


 희선이가 그렇게 마음이 여리고 외로움을 타고 있는 줄은 생각해본 일이 없었기에 내 마음도 아팠다. 어떻게 하면 희선이를 즐겁게 해 줄까 고민하며 교실에 들어갔는데, 희선이가 선물 더미에 묻혀서 활짝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웬일인가 들어보니, 희선이 생일 날이란다. 어제부터 쏟아지는 선물이 오늘은 온통 희선이가 묻힐 지경이었다. 책상 위에도 수북이 쌓여 있고, 책상 밑에 가방에 주체를 못하고 있었다. 케익만 다섯 개란다. 여러 가지 선물에 돼지고기도 몇 근이나 된단다. 어제는 라면 박스에 가득 온갖 것을 넣어 나연이가 했다고 한다. 지난 번 말썽꾸러기 나연이 생일 날, 특별히 혼자서 챙기더니 몇 배로 그 답례를 받은 셈이다. 

 선물 더미에 쌓여 웃고 있는 희선이, 오늘은 외롭지 않아 보인다.

 “태어나서 저렇게 선물 많이 받는 건 처음 봤어요.”

 현우가 입을 못 다물고 부러워하며 말했다. 모두들 희선이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희선아, 외로와 하지마!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군가 반드시 알아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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