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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인의 가슴을 물들인 만남
조회 22
회원이미지돌돌이
2013-03-11 16:54:21
       

2009년 12월 17일에 열린 ‘한미 자랑스러운 의사상’ 시상식에서 이태석 신부는 다음과 같이 수상 소감을 밝혔다.

 “저는 전문의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들처럼 특별한 백신을 개발한 것도 아니고, 단지 내세울 것 없는 자그마한 의술로 병원이 없는 곳에서 원주민들과 몇 년 살았을 뿐인데……. 제 것도 아닌 상을 몰래 훔쳐가는 느낌에 죄책감마저 듭니다.

…… 저는 진료하기 전 1~2분은 환자의 눈만 바라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의사와 환자의 만남 이전에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진실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질병 치료를 위한 단순한 만남이 아닌, 고귀한 영혼과 영혼의 만남으로 승화시키는 의사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태석 신부는 “지극히 보잘것없는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고, 지극히 보잘것없는 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다.”라는 예수님 말씀을 그대로 실천했다. 수단의 톤즈에 있는 한센인(나병 환자) 마을은 이태석 신부가 틈만 나면 들르던 곳이었다. 이태석 신부가 찾기 전까지 그들은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죽어갔다. 이태석 신부는 한센인들에게 집도 지어 주고 병의 진행을 막는 치료제도 구해 주었다. 그는 한센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유일한 외부 사람이기도 했다.

이태석 신부가 고름을 짜고 붕대를 감아 주었지만 맨발로 다니는 한센인들의 발은 늘 상처투성이였다. 상처 부위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 썩어서 잘라내야 한다. 이태석 신부는 그들의 발에 꼭 맞는 신발을 만들기 위해 한 사람씩 도화지에 발을 올려놓고 발 모양을 직접 그렸다. 그 그림을 케냐 나이로비에 보내 잘 닳지 않도록 가죽으로 샌들을 만들었다. 한센인들에게 세상에서 하나뿐인 자신만의 신발이 생긴 것이다.

 ‘문둥이 시인’으로 유명한 한하운이 나병 환자들은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하느님이라는 이태석 신부의 말을 들었다면 슬픔이 기쁨으로 승화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중략>

한하운은 1949년 5월에 <전라도 길>을 비롯한 시 25편을 묶어 첫 시집 《한하운 시초》를 발간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시인 고은은 우연히 이 시집을 주워 읽고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집을 1킬로미터쯤 남겨 놓은 길 한복판에서 한 물체를 발견했다. 그 우연이야말로 필연이었다. 그 물체는 마치 오랜 발광체처럼 팍 저물어 버린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새 책이었다. 나는 사방을 두리번거릴 겨를도 없이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시집이었다. 한하운 시집이었다. 온몸에 전류가 휘감겨졌다. 그 시집 속의 글자 하나하나를 어둠 속에서 뿌리째 뽑아내어 읽어 갔다. 돌부리에 넘어졌다가 일어났다. 아마도 누군가가 사 가지고 가다가 그만 길에 잘못 떨어뜨린 것이리라. 그 시집의 임자를 찾아 나설 생각 따위가 전혀 없었다. 시집은 오직 나를 위해서만 거기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시집을 읽고 또 읽었다. 읽으면서 엉엉 울었다. ‘가도 가도 황톳길’ 이 구절은 곧장 내 심장 속의 주술이 되어 주었다. 밤새 뜬눈이었다. 먼동이 텄다. 두 가지를 결심했다. 나도 한하운처럼 문둥병에 걸려야겠다는 것과 나도 시인이 되어 이 세상의 모든 길을 걸어가며 떨어져 나간 썩은 발가락을 노래하고 이 세상의 길을 노래하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한하운의 시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지만 남쪽 문단에서 그의 활동은 순탄하지 않았다. 나병 증세는 이미 얼굴에까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어 문인들은 그를 마주치기만 하면 외면했고, 작품을 들고 잡지사에 찾아가면 원고를 만지는 것조차 꺼렸다. 그래도 한하운은 인간의 존엄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1955년과 1957년에 각각 시집 《보리피리》,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를 출간했다. 또한 나환자 정착촌인 성계원을 설립해 자치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나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사업에도 힘썼다. 1960년엔 나병이 음성이라는 판정을 받으면서 더욱 활발히 사회활동을 했는데, 1968년 나병을 치료하기 위한 투약으로 간경화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어머니 병들어 죽으실 때 날 두고 가신 길을 슬퍼하셨다.”라고 노래했던 시인 한하운은 1975년 2월 28일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그의 시비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면 소록도에 세워져 있다. 소록도는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마태복음 25장 40절, 45절)

 

- 《시인의 가슴을 물들인 만남》 중에서

 

 

 

《시인의 가슴을 물들인 만남》의 목차

 

1부. 시인의 사랑

1. 외롭고 높고 쓸쓸한

- 굳고 정한 갈매나무처럼 고고히 자기 세계를 지킨 백석

2. 푸른 하늘 푸른 들을 울어 예는 파랑새 되리

- 사랑과 생명을 노래한 ‘문둥이 시인’ 한하운

3. 묏버들 골라 꺾어 보내노라 임에게

- 애절한 사랑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여류시인 홍랑

4.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 조선 시대 최고의 여류시인 황진이

5.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 매화꽃보다 아름다운 시를 쓴 여류시인 계랑

 

 

2부. 시인의 삶

1. 무욕의 삶이 빚어낸 아름다운 시 세계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로 돌아간 시인 천상병

2. 소를 타고 피리를 부는 정승을 보았는공?

- 비 새는 초가살이를 기쁨으로 여겼던 청백리 맹사성

3. 자연과 사람을 뜨겁게 사랑하였노라

- 우리말과 우리글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인 윤선도

4. 스물일곱 송이 붉은 연꽃이 지다

- 중국에서 최초의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킨 천재 시인 허난설헌

5. 혼신의 힘을 다하여 백성의 삶을 바꾸다

- 실학사상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시인 정약용

 

3부. 시인의 신념

1.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 삶도 문학도 ‘부드러운 직선’ 같기를 꿈꾸는 시인 도종환

2.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 영원한 충절을 노래한 시인 정몽주

3. 아직 나의 청춘은 끝나지 않았다

- 하늘과 바람과 별을 노래한 시인 윤동주

4. 타는 목마름으로 네 이름을 쓴다

- 1960~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존재 김지하

5.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 겨레와 조국을 사랑한 한국 근대사의 큰스님 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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