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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인의 향기, 영혼을 물들이다
조회 35
회원이미지돌돌이
2013-02-21 12:22:08
       

고등학교 1학년 때 윤동주의 <서시>를 처음 읽던 순간 마음이 한껏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마치 순결한 영혼에 감전이 된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며칠 동안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삶을 그려보며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때 비로소 ‘시’가 마음속 깊이 다가왔습니다.

1996년 5월에 천상병의 <귀천>을 읽다가 멈칫했습니다. 죽는 일을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간다고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이토록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게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시인의 말은 제게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맞이하기 위해서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마음껏 사랑하라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시를 읽고 나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의 말줄임표를 멋진 삶으로 채워 넣고 싶어졌습니다.

시는 사람의 마음을 잔잔하게 혹은 강렬하게 잡아끄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국어 교과서를 통해 시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시도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배우고 나면 감흥을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오히려 시와 멀어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결국 감수성이 가장 풍부한 시기에 가슴에 짜릿하게 스며드는 시 한 편을 읽을 때의 흥분과 설렘을 수없이 놓쳐 버리는 셈이지요.

그렇게 어른이 되고 난 다음에 세월이 흐를수록 시는 우리의 삶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갑니다. 한 사람의 영혼이 시의 향기와 빛깔로 물들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다행스럽게도 저는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면서 교과서에 실려 있는 시와 그 시를 쓴 시인들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시인의 삶이 곧 시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꼽는 백석의 시와 삶은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제대로 담아낼 수 없을 만큼 매력적입니다. ‘문둥이 시인’ 한하운의 삶은 제게 언제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홍랑의 삶은 안도현 시인이 <너에게 묻는다>에서 얘기한 연탄보다 더 뜨거웠습니다. 조선 시대 최고의 명기였던 황진이의 삶과 시는 시대를 뛰어넘어 흠뻑 사랑받을 만큼 매혹적입니다. 천민 출신으로 종2품의 벼슬에 올랐던 시인 유희경과 이별하고,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과 정신적으로 사랑을 나누었던 계랑은 매화꽃보다 더 아름다운 시를 썼습니다.

천상 시인 천상병은 우리에게 무욕의 삶으로 빚어낸 시 <귀천>을 선물하고 1993년 4월 28일에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연시조 <강호사시가>를 쓴 고불 맹사성은 나들이할 때 소에 올라타서 피리를 부는 정승이었습니다. 자신이 발견한 섬 보길도에서 여생을 마친 고산 윤선도는 사람과 자연, 우리말과 우리글을 뜨겁게 사랑한 시인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최초의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허난설헌은 여자로서 조선에 태어난 한을 창작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실학사상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시인의 마음으로 정치를 하였습니다. 다산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강연에서 도올 김용옥은 “정약용은 오늘날로 말하면 철학자일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위대한 수학자라고 생각한다.”라고 평가했습니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도종환은 한 생애를 곧게 산 나무의 직선이 모여 가장 부드러운 자태로 앉아 있는 절집처럼 삶도 문학도 ‘부드러운 직선’ 같기를 꿈꾸는 시인입니다.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도종환 시인의 말을 들으면 왠지 지금껏 살아온 저의 삶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의 시 <담쟁이>를 읽으면, 나날의 일상에서 벽을 만났을 때, 담쟁이처럼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여, 절망적인 환경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단심가>를 쓴 정몽주는 강직한 성품을 지닌 충신이면서 섬세하고 풍부한 감성을 지닌 시인이었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시인 김지하가 타는 목마름으로 남 몰래 쓰던 민주주의라는 이름은 그야말로 외로운 눈부심이었습니다. 인도에는 간디가 있었고, 조선에는 《임꺽정》의 저자 벽초 홍명희가 “7,000 승려를 합해도 만해 한 사람을 당하지 못한다. 만해 한 사람을 아는 것이 다른 사람 만 명을 아는 것보다 낫다.”라고 평한 한용운이 있었습니다.

2011년 2월 13일 후쿠오카에서 열린 윤동주 시인의 추도식에서 <쉽게 씌어진 시>를 읽다가 눈물을 흘린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 회원 요시오카 미호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지만 일본인으로서 시인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쉽게 씌어진 시’를 읽을 때면 언제나 그의 고뇌가 느껴져 눈시울이 붉어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에게는 윤동주 시인의 삶뿐만 아니라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 회원들의 모습도 한 편의 감동적인 시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책은 제가 시를 가르치면서 삶이 바로 감동적인 시와 같다고 느꼈던 시인들과 그 시인들의 시세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시인들의 참모습과 시의 참맛을 알게 되어 제가 먼저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영혼이 시인의 향기와 시의 빛깔로 물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회원이미지돌돌이  2013-02-21 12:24   답글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강익중 씨가 평화를 염원하며 만든 한글 설치작품 <윤동주의 꿈>이 20일 일본 교토 조형예술대학 다카하라 캠퍼스에 설치됐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강씨가 윤 시인의 68주기(2월16일)를 맞아 기증한 이 작품은 가로 3m·세로 1.5m의 큰 나무판에 세계 어린이들이 자신의 꿈을 그린 그림 500점을 깔고 그 위에 대표작 <서시>를 한글로 새겨넣은 것이다.
이 대학 도쿠야마 이사장은 윤동주의 시에 감동받아 그 정신을 기리려고 그의 하숙집이 있던 자리를 매입, 다카하라 캠퍼스를 건립했다. 2006년에는 이곳에 윤동주 시비를 세우고 해마다 추도회도 열고 있다.(2013. 2. 21.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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