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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을 만났다(후기-강연재구성)- 김현효 선생님 글
조회 17193
회원이미지우리말
2009-09-17 14:23:33
       

김훈을 만났다.

김훈은 남한산성에서 지금 막 내려온 듯했다.
그가 내뱉는 언어는 소설 속 문장 그대로였고, 군더더기 없이 핵심으로 내지르는 말은 적의 목숨을 한칼에 베어버리는 이순신의 칼과 같았다.
김훈은 앉아서 말했으나 요동치는 듯했고, 요동치는 마음은 조용히 한 곳에 모여 눈빛으로 발했다. 남한산성에서 말라가는 조선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칸의 눈빛을 닮았다.



김훈의 말들을 간략히 재구성하려한다.

나는 질서나 계통이 없는 사람입니다. 내 삶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고 어수선합니다. 질서가 없고 계통이 없고 무질서한 나를 자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질서가 없고 계통이 없고 무질서한 나를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삶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만 따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화분에 꽃을 꽂듯 아름다움만 따로 뽑을 수가 없습니다. 증오, 자만, 오만, 비굴 등과 더불어 아름다움은 존재하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나는 아름다움만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남한산성을 쓰게 된 것은 중3때입니다.(여기서 깜짝 놀랐다.)

소풍으로 남한산성을 가게 되었는데, 그때 남한산성은 깨어진 성벽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 성벽 밑에 우리는 쪼로록 앉아있었고 선생님은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말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고 무서웠습니다. 언어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었지만 야만적 학살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인간세상이구나 하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강자들은 약자들이 그들끼리 자율적으로 사는 꼴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구나. 강자들은 약자들을 짓밟고 학살하고 굴복시키는구나. 그곳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구나.

나는 남한산성에 갖혀 있던 '벼라별' 인간들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벼라별 인간들이 임금과 함께 남한산성에 갖혀 있었습니다. '벼라별' 잡놈들이 다 모인 곳이지요.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렇습니다.


김상헌은 자손 만대 추앙받아 마땅한 조선 최고의 선비입니다. 그는 정의와 고결한 삶을 지켜내려고 했습니다. 삶을 선택하여 비굴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인조가 성문을 열고 칸에게 나아가려고 하자 김상헌은 죽음을 선택합니다. 더러운 꼴을 보지 않겠다는 겁니다. 조카들의 발견으로 목숨은 이어가지만, 김상헌은 고결한 삶의 가치를 보여줍니다. 강자의 야만적 학살에도 죽을 수 없는 고결한 조선의 혼과 정신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김상헌은 자손 만대 칭송받아 마땅한 조선 최고의 유학자입니다.

최명길은 말합니다. 적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서 삶을 모색하자.
삶의 길을 열어서 그곳에서 삶을 이어나가자. 그렇게라도 살아가는 것이 삶의 길이다.

인조는 남한산성에 갇힌 47일간 하나마나 한 말들을 하고 듣습니다. 47일간 할 수 있었던 건 말뿐입니다. 남아 있는 게 입밖에 없으니 할 수 있는 건 말이지요. 말들은 하나마나 했고 하나마나 했지만 할 수 밖에 없는 말들을 듣고 견디지요. 김상헌은 고결한 삶의 길을 가기 위해 죽음을 택합니다. 하지만 그건 김상헌의 길일뿐입니다. 인조는 그럴 수가 없지요. 인조는 만백성을 이끌고 죽음의 길로 갈 수가 없습니다. 삼전도에서 머리를 박고 적의 아가리 속에 들어가 그 속에서 삶의 길을 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인조의 길입니다. 아버지의 길이지요. 아버지 된 자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내 책은 성안에 봄이 오고 농민들이 다시 농사를 짓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내가 농사를 짓는 것을 쓰지 않아도 농민은 농사를 지을텐데 나는 그것밖에 쓸 수 없었습니다.

농민들은 원래 성에 살명서 농사를 짓던 말하자면 원주민이지요. 그런데 임금과 그를 따라온 '벼라별' 인간들 때문에 농민들도 같이 성안에 갇히게 됩니다. 그들은 임금 저놈이 언제 가나만 생각할겁니다. 저놈 때문에 우리가 농사도 못짓게 됐다고 말이지요. 그게 바로 농민입니다. 농민은 자신의 일터를 소중히 여기는 겁니다. 그것이 농민의 길이고 백성의 길입니다. 자신의 일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것이 그자들의 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김상헌에게 남한산성으로 가는 얼음길을 열어준 사공도 농민들과 마찬가지이다. 김상헌은 사공에게 자기와 같이 가자고 한다. 자기가 거두어주겠다고. 나는 예판이다 라는 말이 입 끝까지 올라오지만 겨우 참아낸다. 하지만 사공은 그 얼음이 깔린 강가에 남고자  한다. 남아서 청의 군대에게 얼음길을 열어주려고 한다. 그 대가로 곡물이나 얻어볼까 한다고 한다. 그것이 사공의 길이다. 김상헌은 그런 사공에 피가 솟구치지만 그건 김상헌의 길이다. 김상헌은 김상헌의 길을 가는 것이고 사공은 사공의 길로 가는 것이다. 김상헌은 칼을 뽑아 사공의 목을 베어 그의 길을 갔고, 사공은 그 칼을 받아 온순히 쓰러지며 자신의 길을 받아들였다.)


질문과 답변

Q. 기자의 삶에서 작가의 삶으로 전환한 힘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A. 나는 한국일보의 기자였습니다. 기자는 육하원칙으로 기사를 씁니다. 육하원칙으로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신문은 그 신문사의 기관지에 불과합니다. 기사를 입맛에 맞게 편집하고 그것을 진실이라 말하고 정의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진실이고 정이라고 말하니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언어를 다루는 사람으로 고통스러운 것은 언어가 소통에 기여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것입니다. 말을 하면 소통이 되지 않고 단절됩니다.

기자 생활이 소설을 쓰는데 기여한 점은 없습니다. 나는 소설가가 되기 위한 소양이 잘 닦여져 있었습니다. 아까 이야기했지만 중3때 남한산성을 쓰기 위한 생각의 기초를 닦았고 대학교 1학년 때 난중일기를 읽고 칼의 노래를 썼습니다. 나는 영문학과를 다녔는데 영문학과에서 다루는 문장은 아주 화려합니다. 수식이 많지요. 난중일기를 읽어보니 이순신의 문체가 아주 좋았습니다. 수식어가 없어요. 주어와 서술어뿐입니다. 무인이므로 쓸 수 있는 문체였습니다. 적장의 숨통을 한칼에 베어버리듯 문장은 간결하고 힘이 있었습니다. 군법을 어긴 부하의 목을 베고 난 후 이순신은 갑자기 다른 얘기를 합니다. 바다의 바람이 분다. 물결이 높이 솟구친다.는 식으로. 부하를 베어버린 자신의 감정은 침묵 속에 담아놓지요. 그의 문체가 좋았습니다. 그는 무인이었지만 나는 그에게 문체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난중일기의 문체가 칼의 노래의 문체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글을 쓸 때는 문체를 글에 맞게 정합니다. 칼의 노래에는 칼의 노래에 맞는 리듬과 느낌이 있습니다. 그 리듬과 느낌을 살리는 문체를 써야지요.

 칼의 노래를 쓸 때 휘몰이 박자로 썼습니다. 그러다가 그게 늘어져 중물이 중중몰이까지 처졌습니다. 그러나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기력이 빠졌는데 어떡합니까? 알면서 출판사에 넘깁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습니다. 알면서 출판사에 넘기는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Q. 무질서하고 어수선하고 혼란한 삶 속에서 그 삶을 버티는 힘은 무엇입니까?
   
이를테면 혼란한 삶 속에서의 희망은 무엇입니까?

A. 이런 질문을 들으면 참담합니다. 나는 왜 늘 절망의 글만 한 가득 써 놓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등대가 있습니다. 저 멀리 등대가 있고 그 등대를 보고 배들은 길을 잡지요. 하지만 삶에는 삶 밖 저 멀리 등대와 같은 희망은 없습니다. 삶 밖에서 희망을 찾으려 하면 그런 희망은 없습니다. 희망이 있다면 그건 각자의 삶 속에 있겠지요. 작고 소소한 삶 속에 희망이 있겠지요. 그것이 없다면 희망은 관념이고 존재하지는 않겠지요. 나는 혁명보다는 일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늙은이가 하는 말이지요. 젊은 사람들은 나의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Q. 공무도하를 연재하시는데 어려움은 없으신지요?

A. 나는 내가 쓴 글을 다시 보지 않습니다. 후반부에 가면 기력이 빠져 있는 걸 알고 있는데 절대로 다시 보지 않지요. 나는 원고지에 글을 써서 넘기면 알아서 인터넷에 올리니 나는 인터넷에 올라오는 댓글들을 보지 않아서 별 고통은 없습니다. 다만 '님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라는 문장만 남아서 전해지는 공무도하가에서 그 멜로디를 찾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복원한다는 것이 어려워요. 그걸 할 수 있다고 여긴 나의 허영과 욕심 때문에 고통이 있습니다.

 
 회원이미지박현효  2011-08-16 20:46   답글    
김현효 아니고 박현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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