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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부산경남여름연수-최규석 강연회 강연후기
조회 14428
회원이미지이성수
2009-07-30 13:59:30
       

7월 23일 밀양, 최규석 작가를 만나다.

 

7월 23일, 밀양 부산대 밀양교정에서 열리는 전국국어교사모임 경남, 울산, 부산 지역 연합 연수에 갔습니다. 연수를 정식으로 들은 건 아니고, 연수일정 응원 방문차 들렸습니다. 연수 일정 중 ‘작가와의 대화’시간이 있고, <습지생태보고서>, <대한민국원주민> 등의 작품으로 알려진 만화가 최규석 씨가 초청된 걸 보고, ‘아 이거 듣고 가자!’고 마음을 먹고 슬며시 공짜 강의를 듣고 말았습니다. 좋은 강연을 무임승차로 들은 걸 사죄하는 의미로 연수 후기를 올립니다. 경남, 울산, 부산 지역 활동가 선생님들과 연수에 오셨던 선생님들이 부디 너그러이 보아주시길 바랄게요.

 

최규석 작가는 젊습니다. 77년생, 서른 셋이니 뭐가 젊으냐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많이 알려진 만화가라면 왜인지 모르게 그래도 좀 더 나이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서 ‘젊다’는 생각이 저한테서는 떨어지질 않네요. 최규석 작가 강연이 시작되기 전 복도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최규석 작가가 건물로 들어오는 걸 옆에서 봤는데요, 최규석 작가는 만화가하면 떠오르는, 괴짜스러운 분위기와 거리가 먼 팔뚝이 건장한, 짧은 머리에 콧수염을 살짝 기른 근육질(?) 외모였어요. 거기에다가 눈매가 부리부리한 것이 저 멀리 실크로드쪽에 살고 있는 유목민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하여간, 최규석 작가가 건물 안에 등장을 하니 선생님들이 여기저기서 술렁거리기 시작했고, 곧이어 강의실로 들어서서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진행은 사회자 선생님이 미리 연수 수강생들에게 받아놓은 질문들을 하나 하나 던지고 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요,사회를 맡으신 선생님이 살짝 흥분을 하셨는지 질문이 속사포네요. 그에 비해 최규석 작가는 차분하고 진지한 자세로 답변을 하는 것이 무척 대조적이어서 재미나더군요.

 

앉자마자 자기는 인기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며, 작가와 음악이 함께 하는 ‘북콘서트’ 행사에서 늘 공지영 작가, 김형경 작가 같은 인기 작가에 따라 들러리로 나서서 ‘꽃돌이’ 역할을 하는 데에 만족한다는 너스레를 떨었지만, 연수장 분위기는 이미 달뜬 흥분 상태. 여선생님이 절대다수인 연수 수강생들은 최규석 작가의 눈짓, 말 한 마디에 짧은 경탄을 터뜨리고. 덩달아 저 역시 빙긋빙긋 웃으면서 최규석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어지는 글에서 따옴표로 묶은 것은 최규석 작가의 답변을 제 나름대로 정리한 부분입니다. 기억나는 걸 대충 옮긴 것이라서 제 주관도 마구 뒤섞여 있다는 걸 참고하시길.

 

“제가 좋아하는 작품으로 <꿀빛 피부를 가진 아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을 제가 좋아하는 것이 ‘자기 연민’이 별로 없다는 겁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공연히 갖는 슬픔’이 없으면서도 읽는 사람에게는 묘한 공감과 슬픔을 줍니다. 해외로 입양되어 자라는 자신의 처지가, 명품 핸드백 하나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그저 담담하게, 어떤 슬픔 없이 말하는데도 그것이 참 슬픕니다. 저는 그런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좋아합니다. 중심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시선, 사태에서 한발 비껴선 시선 그런 걸 좋아합니다. 아무래도 진지하게 한 가지에 몰입하는 것을 싫어하는 건 천성인 것 같습니다.”

 

“제 작품이 인기가 있는 비결이 뭘까, 아무래도 시선을 낮춘 것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들은 아무래도 자기가 제일 잘 아는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남들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이야기를 하려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독자의 수준으로 제 눈을, 제 이야기를 자꾸 낮추어보려고 애를 씁니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 나오는 글인가요, ‘세상의 가장 높은 사람도 너보다 높지 않고, 세상의 가장 낮은 사람도 너보다 낮지 않다(이글의 원출처는 확인하지 못했어요...<예언자>를 저는 안 읽었거든요 ㅠ.ㅠ)’는 말이 있는데 저는 아주 쉽게, 제 마음대로 이해를 했어요. ‘그 놈이 그 놈이다’. 그렇게 보면, 자기 안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기만 한다면 누구라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말이 되거든요. 내 안의 이야기를 쉽게, 솔직하게 꺼내는 거 이게 제 만화의 인기 비결이라고 생각을 해요.”

 

“저는 어릴 적부터 따져보는 걸 좋아했어요. 누구한테 달려들어서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것이 아니고, 그저 상황에 대해서 이게 맞나 저래야 하나 이런 걸 생각해보는 걸 좋아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제 친구가 우리 엄마 욕을 했다고 해봐요. 내가 그 친구보다 세면 저는 그 아이를 때리겠지요. 그러면, 그 친구는 제 앞에서 욕을 하지는 않겠지만, 그 욕을 하고 싶어하는 마음 자체는 없어지지 않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때리는 건 해결이 아니죠. 그렇다고 제가 그 친구보다 약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면, 그 친구는 계속 우리 엄마 욕을 하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결은 해야겠고. 이런 식으로 폭력이 필요한 것인지, 필요하다면 왜 필요하는 것인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물을 소재로 해서 의인화하는 걸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제가 사물을 의인화하게 된 작품들이 여러 지면을 통해서 먼저 알려지게 되어서 그런 것 같고, 굳이 사물을 의인화하는 것의 매력을 말한다면, 하루키의 <세라복을 입은 연필>이란 책을 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쭉 늘어놔요. 그런 걸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고, 그런 의인화는 뇌를 자극하는 데에 아주 제격인 것 같아요. 아이디어 놀이를 하는 것이라고 할까? 특히 ‘군대 의자 이야기’는 제가 군생활한 것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남들은 그냥 평범하게 보고 지나치는 걸 다르게 보면서, 남들보다 크게 놀라며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어로 유명한 지승호 씨한테 제가 여러 번 조갑제 씨를 인터뷰하자고 졸랐어요. 인터뷰만 하면 제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삽화를 그려주겠다고 하면서 졸랐는데, 지승호 씨가 안해요. 제 생각에 무서워서 못하는 것 같아요. 뭐가 무서우냐, 뭐가 두렵냐 하면, 자기 생각을 다 버리고 재조립을 해야할지도 모르는 두려움이지요. 상대방이 이러이러한 사람이다, 하는 선입견이 있으니까 그 사람과 맞짱을 뜨다가 자신의 생각이 다 바뀌어버리면, 그 사람에게 휩쓸려 가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생기는 겁니다. 저는 그런 두려움 때문에 소통이 어렵다고 생각을 해요. 사람 그 자체로 그냥 만나면 되는데 그게 쉽지가 않네요.”

 

“촛불 시위에 제가 여러 번 나갔어요. 왜 나갔느냐 처음에는 신기했어요.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 이렇게 길을 함께 걸으면서 소통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한데, 그 날 새벽에 친구가 잡혀갔어요. 화가 났지요. 화가 나서 계속 나갔어요. 그런데 나가면 나갈수록 화가 점점 더 나는 거예요. 촛불집회의 폭력성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의 의견도 일면 일리가 있지만, 그 분들이 놓치고 있는 건, 속되게 말해서 ‘누가 선방을 날렸는지를 잊고 있다’는 겁니다. 거리를 걷는 것이 구속사유가 되는 나라. 이게 대한민국입니다.”

 

“만화가 시국 선언에 참여했습니다. 이름을 올렸죠. 원래는 시국 선언문을 낭독할 뻔도 했는데, 그냥 이름만 올렸습니다. 저는 지금 이 세상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이라도 해야한다고 생각을 해서 시국선언에 참여한 겁니다. 그런데 그게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만화가들은 가진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큰 용기를 내지 않아도 할 수 있어요. 다른 문화계 인사들에 비해 ‘무식하다, 가진 것이 없다’ 이렇게 보이고 그래서 쉽게 움직일 수 있어요. 비교하자면 영화인들이 시국선언을 한 건 정말 대단한 겁니다. 그 사람들은 목숨 걸고 하는 거죠. 영화를 하려면 투자를 받아야 하고 그런 걸 하려면 밉보이거나 티가 나면 어렵잖아요. 그런데도 시국 선언에 참여하는 거 그게 대단한거죠.”

 

“제 아이디는 ‘모과’인데요. 그게 대학 다녀오니까 다들 이메일이 뭐냐고 물어봐요. 그래서 만들었는데, 원래는 ‘모과나무’를 생각하고 만든 거에요. 모과나무는 배배 꼬여 자라서 목재로 쓸 수가 없어요. 장자 이야기에 못난 나무가 살아남는다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자라서 나라의 기둥이 되어라, 동량이 되어라’ 이런 이야기가 참 싫었어요.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또는 ‘죽어서 거름이 되어라’ 이런 말 다 버리고, 나 혼자, 나 혼자 가늘고 길게 가자! 이런 생각으로 모과나무를 제 아이디로 삼았어요.”

 

“제가 제 홈페이지에 김규항, 진중권, 고종석 이런 사람들의 글을 열심히 퍼날랐어요. 제가 읽고 좋은 글들을 다른 사람들도 읽고 좋아하면 좋으니까요. 그런데 누가 ‘명품잡화상’이라고, 제 스스로 쓰지 않고 남들의 명품을 가져다 늘어놓는다고 비난을 해서 요즘은 퍼다 나르질 않고 있어요. 저는 요즘 진화론, 인류학 쪽의 책들이 재미있어요. 그 쪽 책들을 읽다보면 머리가 계속 움직이는 느낌이 들고, 제 눈이 확 넓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만화에 대한 편견이 지금은 오히려 편합니다. 처음에 만화할 때는 괜히 그런 거에 흥분하고 그럴 수록 막 진지해지고 그러기도 하는데, 저는 지금 오히려 지식인으로서 무얼 해야한다는 책무감에서 자유로워서 좋습니다. 그리고 만화가들에 대한 편견을 어떻게 깨야겠구나 하는 문제의식은 그리 없습니다. 그건 역사가 길지 않은 예술 장르가 꼭 거쳐가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을 해요. 만화는 생긴지 100여년 남짓되는 역사가 길지 않는 장르인데, 사진이건 다른 예술도 보면 처음에는 다 어떤 편견에 노출되어 있지요. 그건 역사가 길지 않은 장르가 꼭 밟고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만화가 진지해져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면 오히려 더 예술로서의 지위가 탄탄해질 것 같아요. 그리고 만화가 예술로 진지하게 평가를 받으려면 소위 먹물들의 평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건 ‘만화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먹물들이 많아져야’ 가능할 것 같아요. 한 10년, 20년 정도 더 지나면 만화에 대한 편견들이 점점 사라질 것 같다고 기대를 합니다.”

 

애초에 준비했던 질문들이 다 떨어지고 그 자리에 오신 분들이 자유 질문을 하는 시간이 되었는데, 여기서부터가 이번 강의의 압권이자 백미인 것 같아요. 이 자리에 오시면서 학급 아이들의 질문을 모아오신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아이들의 질문이 어찌나 참신하고 발랄하던지! 모두가 자지러지면서도 마음속으로 묻고 싶었으나 감히 엄두를 못냈던 유치찬란하면서 진솔한 질문과 응대를 열심히 들었답니다.

 

아이들의 질문과 답변을 소개해보자면,

 

1. 어릴 때 만화 얼마나 봤나요? 그 때 주위에서 뭐라고 하지는 않았나요?

남들 보는만큼 봤어요. 당연히 주위에서 뭐라고 했지요.

 

2. 고우영, 이현세, 허영만 이런 분들을 만나봤나요? 그 중에 누가 제일 포스가 셌나요?

다들 뵈었는데, 허영만 선생님이 제일 세신 것 같아요. 그 이유가 지금도 작품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건데, 작품을 안 하고 있으면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올라 있어도 남들한테 한 수 꿀리거든요. 작품으로 승부하는 거죠. 작가는 작품 안 하면 꿀리는 건데, 허영만 선생님은 지금도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시면서, 80년대와 90년대를 거쳐 지금까지 살아남으셨을 뿐 아니라 점점 더 인기가 높아지고 있잖아요.

 

3. 집에 다른 작가의 만화책은 몇 권이나 있나요?

세어보지는 않았으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100권 이상 있을 것 같아요. 그 중에 <2001 스페이스 판타지아>라는 작품을 아주 좋아합니다.

 

4. 그림을 아주 못 그려도 문하생으로 받아주나요?

일단 저는 문하생이 없습니다. 예전에 만화계가 아주 활발하게 움직이던 시절에는 문하생 제도가 있었고 그 당시에는 문하생들에게 별도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관행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예전에는 ‘잡지 연재 - 단행본 출간 - 애니메이션 제작’의 선순환 구조를 가지고 있었어요. 90년대 초반을 기억해보세요. 그런데 그런 구조가 깨지면서 문하생 제도도 함께 사라져버렸죠.

그리고 그림을 아주 못 그려도 되냐는 질문에는 그림을 잘 그리건 못 그리건 상관없다고 말씀드릴게요. 진입장벽이 가장 낮은 곳이 저는 만화계라고 생각을 해요. 그림 실력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문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 이야기를 자기가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이것이 중요합니다.

 

5. 돈은 얼마나 버나요?

오... 아이들은 그걸 제일 궁금해하네요. 어딜 가도 아이들이 물으면 그걸 물어봐요. 음 많이 버시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고 한데... 만화가들은 흔히 만화계의 수익 구조가 ‘오’자 형이 되어 있다고 해요. 몇몇 인기 작가가 위에 있고, 중간은 아주 가늘게 이어지고, 대부분은 바닥에 깔려 있다고 해서 말이죠.

사실 안정적인 수익 구조가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작품이 되려면 자기가 가진 것을 다 쓰고 나면 채울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하는데, 이건 수익이 안정적이지 않으면 어렵지요. 작품을 하다가 이야기가 고갈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어요. 이 때 선택을 해야지요. 계속 빨릴 것이냐 아니면 새롭게 채울 것이냐! 새롭게 채우는 것이 맞는데, 수익이 안정적이지 못하니까 계속 빨리게 돼요.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작품이 점점 안 좋아지죠.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이기도 해요. 데뷔작이 제일 좋은 경우가 많은 거죠.

 

6. 다른 것도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만화가가 된 계기는 뭔가요?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다른 거 할 수 있는 게 없어서죠. 잘된 만화 작가들의 공통점이 한 가지 있는데, 그건 ‘근원을 알 수 없는 자신감’이에요. 나는 잘 될 거다 하는 굳건한 믿음,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 긍정, 어릴 때부터 공부를 못해도 나는 잘 될 거다, 뭘 못해도 나는 잘 될 거다 이러고 살아요. 그렇게 나이를 먹어보면, 결국은 정말 할 수 있는 것이 만화밖에 없지요. 만화가 강풀은 만화가가 되기 전에 이력서를 400통을 썼어요. 다 떨어졌죠. 이건 세상의 상식으로 보면, 세상이 나를 버린 거다 이런 건데, 강풀은 그래도 여전히 나는 잘 될 거다 믿고 있었어요. 그 믿음과 자신감이 결국 강풀을 그리 만든 것 같아요. 만화가가 되는 데에는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여기까지가 아이들의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이었는데요. 아이들은 어찌나 솔직한지, 정말 그 질문들 들으면서 많이 웃었습니다. 특히 만화가들 사이에 누가 제일 포스가 세냐는 질문은 웃기면서도 그에 이어진 답변이 머리를 치더군요!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누구나 자신의 생업으로 인생에 승부를 건다는 그 말이 당연하다 생각하면서도 멋지게 보이는 건,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이겠지요?

 

그리고 뒤이어 몇 분 선생님들께서 더 질문을 던지셨는데 그 중 인상 깊었던 것 두 가지. 특히 진중권 선생님의 강연에서 들은 내용을 물어보신 질문은 최규석 작가한테 불을 지른 질문이었어요. 그때까지 앉아서 웃으면서 여유있게 답변하던 최 작가가 벌떡 일어서서 자기 스스로 화이트보드를 가져다가 이렇다 저렇다 설명을 적어가면서까지 열불나게 답변을 했으니 말이죠.

 

1. 둘리 패러디 작품은 어떻게?

사실 제 첫창작집은 학교 과제물 모음집에 가깝습니다. 둘리도 원래는 학교 숙제였어요. ‘둘리를 패러디하라’는. 그런데 패러디는 원래 원작을 좀 가볍게 비트는 형식이잖아요. 그런데 둘리는 원작이 가볍단 말이죠. 가벼운 걸 어떻게 더 가볍게 해? 이런 생각을 하다가 아예 뒤집은 거죠. 무겁게 가자. 그래서 그 둘리 속 캐릭터의 성격을 단순하게 잡아서 그걸 현실 속에 떨구어 봤어요. 희동이는 폭력적이다 이러면 폭력 사범이 되었겠구나 이런 식으로요.

 

2. 진중권 교수의 강연을 듣다 보니 우리 만화는 일본의 만화에 비해 철학,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해서 더 발전하지 못한다고 지적하던데 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요?

 

“진중권 교수의 지적도 일면 타당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쉬운 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가져다 붙이기 쉬운 답입니다.”

 

“저는 실질적인 문제가 ‘시장의 문제’에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나라에 좋은 애니메이션 감독 아주 많습니다. 해외 애니메이션 영화제 가보면 단편 부분에서 상 받는 거 거의 한국 감독들입니다. 아주 두각을 나타내요. 그런데 정작 상업 영화에서는 힘을 못써요. 감독이 머리라면 그 머리가 움직이는 수족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나라에는 그 수족에 해당하는 속칭 노가다 인력이 없어요. 시장이 워낙 없으니까 애니메이션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인력이 아예 사라진 거죠.”

 

“아주 단적으로 말해서, 일본에서 제일 우수한 스토리텔러는 만화계에 있습니다. 한국은요? 한국의 제일 우수한 스토리텔러는 드라마계에 있습니다. 왜죠? 단순합니다. 돈을 많이 주니까. 결국 한국의 애니메이션이 더 발전하지 못하는 건 시장이 붕괴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봐요.”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이 아주 호황이던 때는 9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TV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을 많이 했지요. 영심이, 하니, 슈퍼보드 등등. 그건 그 당시가 만화계의 선순환 구조를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잡지 연재 - 단행본 출간 - TV 애니 - 극장용 애니 - 게임’ 등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있었어요.”

 

“잡지는 작품들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됩니다. 인기 있는 작가의 작품이 중심에 서고 신인이나 그 이외의 작가들 작품이 함께 나오면서 독자층을 확대하는 역할을 하지요. 우리 나라 만화 시장이 한꺼번에 무너진 것이 만화 잡지에서 다양한 만화를 선보이면서 저변을 넓혀가야 하는데, 일본풍의 만화가 인기를 끄니까 그런 유형의 만화만 계속 선보이고 이전 선배 작가들의 작품을 모두 빼내 버렸어요. 그러니까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위축이 되고 만거죠. 20년 전 작가들 중에서 허영만 작가 단 한 사람만 살아남았어요.”

 

“그리고 TV 애니메이션은 작가들을 단련시키는 데에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해요. 예술에는 반복 연습을 통해서 생겨나는 부분이 있는데, TV 애니메이션은 바로 그 무한 반복 연습의 자리가 됩니다. 유럽 애니메이터 대략 1년에 60여장 정도 그려요. 일본은 1년에 1000장도 넘지요. 무수히 반복하면서 자연스레 나오는 예술적인 진보가 일본 만화에는 존재하지요. 그걸 TV 애니메이션이 담당하는 겁니다.”

 

“그리고 만화가 애니메이션화되고 게임, 영화로 수익구조를 다양화해가면서 돈을 벌게 되면 그걸 다시 만화에 투자를 해야 선순환 구조가 마무리가 되는데, 90년대에 정부에서 만화계에 돈을 투자하면서 그게 무너졌어요. 일본에서는 만화에서 돈 벌면 만화에 돈을 써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만화에서 돈 벌면 그걸 땅 사는 데에 써요. 선순환이 안 되는 거죠.”

 

우리 나라에서는 1명의 천재가 몇 만을 먹여살린다면서 1명의 천재를 기르려고 애를 쓰는데, 사실 그 1명의 천재가 나오려면 수천의 기술자들이 필요해요. 일본 만화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원화가’에요. 이게 뭐냐면 만화 원작의 평면 캐릭터를 애니메이션의 입체로 옮겨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인데, 평면을 360도 회전하는 입체로 바꾸면서 원작 캐릭터의 느낌을 그대로 옮겨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일본의 원화가들은 세상에서 가장 데생력이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제가 제일 훌륭하게 생각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아키라’인데요. 거기에는 일본의 전설적인 원화가들이 다 참여를 했어요. 물론 만화 원작의 힘 자체도 대단하지만, 그걸 애니로 옮겨낸 기술자들의 능력이 참 놀랍다고 생각을 해요.”

 

“우리 나라의 지금 상황에서는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사람을 데려다 놓아도 좋은 작품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왜? 스텝이 없어서요. ‘뇌’가 없는 것이 아니라, ‘기술력’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이렇게 만화산업의 생태계가 한번 붕괴된 이상 이전의 선순환 구조를 다시 되살리는 것은 어렵다고 봐요. 이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만화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는데 여기는 독과점 구조이고, 그 성과를 옮겨받을 산업, 애니메이션 시장이 붕괴되어 있어서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이어진 강연회는 약속했던 시간이 다 되어서 결국 자리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청소년들에게 마무리 인사 한 말씀 부탁했을 때 최규석 작가가 남긴 말로 글도 마무리 할게요. 그날 최규석 작가 강연회 참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아마도 거기 계신 분들 다들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사진을 찍어놓은 게 없어서 아쉽네요. 다른 분들 누구라도 사진 올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만 줄입니다.

 

“청소년기 참 살기 어려운 시기죠. 그 때는 오로지 자기 밖에 모르는 시기인데, 저는 그 시기에 ‘타인의 관점’을 알게 되면 훨씬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제 작품이 청소년들이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자기 안에서 벗어나는 훈련을 하면 청소년 시기를 사는 데에 큰 보탬이 될 것 같고, 거기에 제 작품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회원이미지진웅용  2009-08-16 11:31   답글    
타조샘, 못 들은 아쉬움을 털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간접경험 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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