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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일 싫은 사람
조회 113
회원이미지김은형
2008-04-10 14:18:30
       
 

 

2008.4.4(금) 제일 싫은 사람


 오늘은 문화생활위원회가 모이는 날이다. 전 날, 인형전시회를 다녀왔다는 정보가 새어나간 모양이다. 왜 자기들은 인형전시회에 안 데리고 가느냐고 항의한다. 그래서 물어보니 문화생활위원회 애들도 가고 싶단다. 그래서 나는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해태제과에 갔다.

 “선생님, 전 이런 인형 전시회는 처음인데,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요.”

 “저도요.”

 정작 나연이는 남자처럼 덤덤한데, 태욱이와 성철이는 예의 붙임성 있는 말투로 인사를 건넨다.


 문화생활위원회는 네 명뿐이다. 성철이, 태욱이, 혜성이, 나연이. 다른 친구들과는 섞이기 힘든 꾸러기 위원회라고나 할까. 2학년 때 이미 노는 그룹에 끼어서 흡연이나 기타 등등으로 불려 다니거나 징계를 받은 경험들이 있다. 즉 학생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수시 점검 대상인 셈이다. 성철이와 태욱이는 그래도 작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 붙임성 있게 이미 집안문제로 상담을 한 일이 있다.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선생님들에 대해서는 사근사근하게 굴 줄도 안다. 그러나 나연이는 작년보다 훨씬 나빠지고 있다.


 학교 근처로 돌아와 라면과 김밥을 파는 집에서 다리쉼도 하면서, 준비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준비한 종이를 반으로 나누어 한 족에는 ‘제일 싫은 사람’을 그리는 것이고, 다른 한 쪽에는 ‘제일 좋은 사람’을 그리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네 명의 아이들이 모두 똑같이 ‘학생부장 선생님을 제일 싫은 사람으로 꼽았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 역시 모두 똑같이 어울리는 친구들 이름이었다. 싫어하는 이유는 ’잘못을 하지도 않았는데 의심을 하고, 관리를 한다.‘는 것이다.

 “잘못 한 사실에 대해서만 야단을 치면 되는데, 우리가 잘못을 저지를 것이라고 정하고 몰아세우니까 싫은 거죠.”

 어울리는 친구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고민을 나눌 수 있고, 위로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 교사들은 여전히 감시자요, 통제자인 것이다. 아이들을 위로하거나 고민을 나눌 수 없는 사람인 셈이다. 이 간극을 좁힐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야기를 나누는데 진경이와  다른 학교로 방출된 수진이가 들어왔다. 그 애들에게도 김밥과 라면을 사주고, 우리는 계속 이야기를 진행햇다.

  “선생님, 우리가 만약 우리가 걸린다면 진짜 전학 보낸다는데, 어떻하죠?”

  비쩍 말라 금세 부러질 듯 연약해 보이는 성철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는다.

 “그러니까 걸리지 말란 말이야!”

 키가 아주 작은 혜성이가 자기처럼 걸리지 않으면 될 거 아니냐며 거들먹거린다.

 “아유, 이 자식. 학생부 명단에서 빼주느라고 얼마나 열심히 변호해 주었는데.... 우리 공도 모르고..... 너 진짜 그럴 거야?”

 태욱이가 억울한 듯 따지고 들자, 모두들 한 바탕 웃는다.

 “선생님, 진짜 전학만은 안 가게 해 주세요.”

 성철이가 매달린다. 이 아이들에게 가장 큰 공포는 전학시키는 것이다. 강제 전학을 당했던  수진이나 소희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를 보고 들은 탓이 클 것이다. 

 “선생님, 제발 우리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네?”

 나는 이 막연한 애원에 그러마고 대답하며 거들먹 거려본다. 내가 우습다.


 어두웠던 아아들의 표정은 ‘방학 무렵 함께할 야영 계획에 대해서 토론이 시작되자 바뀌기 시작했다.

 “선생님. 담력훈련 할거에요. 한 밤중에 두 사람씩 4층 건물 꼭대기에 가서 확인증을 받아오는 일을 시킬 거에요. 아주 무섭거든요.”

성철이 말에,

“무섭긴 뭐가 무서워! 혼자 가야지 담력훈련이 되지.”

 아이들이 무섭다는 지각대장 나연이가 퉁명스레 내쏜다. 한사람 씩 하자는 의견과 남녀 두 사람씩 하자는 의견 등 옥신각신하는데 시계는 어느 덧 여덟 시를 향해 간다.


 아이들을 보내며 돌아오는 길. 어둠이 깔린 길에 네온사인이 온통 명멸한다. 밝고 환한 네온. 작고 초라한 네온, 온통 번쩍거리며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네온들... 그렇게 각양각색으로 크고 작게 빛나는 네온을 보며 아이들의 다양한 모습처럼 느껴진다. 저마다의 크기와 빛깔로 빛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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