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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학교 오는 게 행복해요.
조회 133
회원이미지김은형
2008-04-01 15:15:15
       
 

이천팔년 삼월 삼십 일일 (월)


학교 오는 게 행복해요.


오늘은 학업관리위원회 모임을 가졌다. 커다란 동그라미가 그려진 종이를 한 장 씩 가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표현해보도록 했다. 천안에서 전학 온 나리가 제일 먼저 말하겠다고 나섰다.

 “저는 동그라미를 제 얼굴로 그려봤습니다. 반쪽은 이렇게 기뻐서 웃고 있지만, 반쪽은 이렇게 어깨도 축 쳐지고 머리도 헝클어진 채 울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학교에 오는 게 정말 즐겁습니다. 하지만, 집에 가면 혼자서 울곤 해요”

 쾌활하고 적극적인 모습만 보여주었던 나리였기 때문에, 우리는 동시에 ‘왜?’ 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냥, 불안하기도 하고, 나쁜 기억이 떠오르기도 해서.....”

 우리는 점점 궁금증에 빠져들었다. 뭐가 불안한지, 그리고 어떤 나쁜 기억이 나리를 괴롭히는지 질문을 할 수 밖에. 글ㄴ데 나리의 입에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놀라운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나리는 ‘다른 사라에게는 비밀로 해달라며’ 울면서 말했다.

 나리는 천안에서 나쁜 아이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그것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는데, 오랜 동안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어느 날 나리가 친구와 천안역 근처를 지나가는데, 두 세 명의 아이들이 다가와 전화를 한 통 걸고 싶다며 핸드폰을 빌려달라고 했다. 나리는 아무 생각 없이 전화를 빌려 주었다. 그 애들은 핸드폰을 돌려주지 않은 채 따라오라고 해서 으슥한 골목까지 따라갔다. 거기에 가니 일곱 명 정도의 패거리들이 나리와 친구에게서 돈을 뺏고는 계속해서  때렸다. 강제로 담배를 피게 하고, 담뱃불로 지지려고도 하고, 남자애들을 불러 성폭행을 하겠다고 협박도 했다. 자전거 받침대를 친구의 중요 부분에 던지기도 했다. 나리는 따귀를 하도 많이 맞아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퉁퉁 부었는데, 무려 세 시간 반 만에 한 아주머니의 신고로 경찰에게 구출되었다.    


 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모두 한숨을 짓고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은 나리를 위로해주며, 나리만큼은 아니지만, 골목이나 길거리에서 어이없는 일을 당한 사례들이 쏟아져 나왔다. 자신이 당했거나, 혹은 가족이나 친척들 중에서 당한 폭행들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한 시름 돌린 후, 우리는 다시 아이들의 그림을 보며 얘기를 계속했다. 중간고사 걱정, 살쪄서 걱정, 학원 다니느라 피곤한 걱정, 힘들게 사는 부모님 걱정 얘기들이 많았다. 말이 통 없는 주희까지 자기 얘기를 모두 끝내자 다섯 시 반이 넘었다.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진행하고 나니 약간 피로했다. 내가 정리를 하려고 하자 아이들은 펄쩍 뛰며 애원한다.

 “선생님, 제발 끝내지 말아요. 우리 얘기 좀 더 해요.”

 “니네 학원가기 싫어서 그러는 거지?”

 아이들은 그 이유도 있지만, 단지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선생님, 우리는 얘기가 하고 싶어요. 우린 정말 얘기할 시간이 없단 말이에요.”

 모범적이기만 한 지선이가 오늘은 작심을 했는지 앞장서서 외친다.

 “얘들아, 니네 빨리 비밀 얘기 털어놔, 지금 아니면 언제 해? 빨리 해. 아니면 이제 기회가 없어.”

 나는 마음이 아팠다. 많은 명령과 지시와 정보는 있지만, 마음을 터놓고 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채 쫒기는 아이들. 진정한 대화에 굶주린 아이들의 모습이 말이다. 그 때 조용히 있던 현정이가 얘기하고 싶은 게 있는 말하기 힘든 일이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모두 ‘해, 얘기 해.’하고 외쳤다. 현정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도 시작하기 전에 눈물부터 쏟아낸다. 

 “아빠하고 엄마가 곧 이혼할 것 같아요. 그래서 돈 때문에 매일 싸우고, 오빠까지 개입해서 싸우는데, 나는 매일 화장실에 들어가서 혼자 울기만 했어요.”

 작고 예쁜 현정이 얼굴이 눈물로 범벅된 것이 너무 가여워서 아이들도 모두 따라 운다. 울다가 나리가 외친다.

 “아이, 우리 엄마, 아빠도 이혼했어.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말 마. 그 것 뿐인 줄 알아. 이혼하고 얼마 안되서 엄마가 바람을 피워서 남자를 데리고 왔단 말이야. 난 그 아저씨가 넘 싫어서 엄마랑 매일 대판 싸우고 뛰쳐나가고... 아휴, 말도 하지 마.”

 현정이 집안 얘기는 한 삼십 분 계속되었다. 좋은 직장 그만두고 사업하다 망한 아버지는 자존심 때문에 아무 일이나 하려고 하지 않아, 엄마 혼자 온갖 고생을 하는 게 마음 아프다. 현정이는 자신의 이런 처지를 아이들이 알까봐 그것도 두렵다고 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자신들도 모두 엄청나게 문제 많다고 고백한다. ‘아빠랑 엄마랑 싸우고 뭐 돈 때문에 지지고 볶고...’ 그런 일들은 아이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일상들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남녀의 유전적인 성젹 차이나, 사회적 관습과의 관계. 이혼을 바라보는 시각, 프랑스의 핀란드 할로넨 여성 대톨령 사례 등을 예로 들면서 좀더 자유로운 관점을 많이 제시해 주었다.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나 또한 그런 아픔이 있었다는 얘기도 해 주었다. 어른들은 어른들 만의 고민과 갈등이 있을 뿐이라 생각하고,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의 앞길을 헤쳐 나가야 한다고 말이다.  아이들은 언제 울었느냐는 듯, 다시 활짝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나는 자리를 정리하기 위해 마지막 발언을 던졌다.

 “어쨋든 얘들아. 나는 너희들이 있어 학교에 오는 게 행복하다. 너희들도 학교에 오는 게 행복했으면 하는 게 내 꿈이야.”

 그러나 아이들이 고함을 치듯, 일제히 외쳤다.

 “선생님, 우리는 학교 오는 게 너무너무 행복해요!”

 “정말?”

 “네!!!! 진심이에요. 우리 반 애들 짱 사이 좋아요. 넘 재미 있어요. 정말정말 즐거워요!”

 이구동성이다. 나는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즐겁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상할 정도다. 원래 학기말쯤 되어야 나타나는 증상인데, 3월 말에 벌써 거기에 도달하다니, 이거 너무 빨리  목표에 도달한 거 아닌가? 나는 내 볼을 꼬집어본다. 아프다. 현실이다.

 “아!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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