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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십 년 뒤에 노숙자?
조회 106
회원이미지김은형
2008-03-28 09:46:45
       
 

이천 팔년 삼월 이십육일 수요일


이십 년 뒤에 노숙자?


 보통은 학기 초에 담임교사가 아이들과의 소통을 시도하기 위해, 개별면담을 실시하기도 하지만 일대일 만남은 부자연스러운 점이 많고 자칫 교사의 일방통행식 대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나는 항상 학급 자치의 구성에 맞는 소집단별(두레별 또는 위원회별)모임을 갖고 자연스러운 대화의 장을 만들곤 한다. 10여년  전 두레별 모임의 기억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성’에 관한 이야기로 번지자 밤 아홉 시가 다 되어도 끝날 줄 모르던 대화, 그대로 밤을 새워 얘기하자던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우리 반은 이번 주부터 다음 주에 걸쳐서, 방과 후에 위원회별 모임을 갖기로 하고 날짜를 조정해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오늘은 첫 모임으로 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각 위원장들이 참여하는 위원장단 모임을 가졌다.

 먼저 준비한 쵸코파이와 사과를 깍아 나누어 먹고,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먼저 종이와 싸인펜, 파스넷 등 간단한 도구를 준비한 후 ‘20년 뒤의 내 모습을 그린 후 설명을 하도록 했다. 학급의 작은 리더들이라 할 수 있는 이 아이들은 과연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옛날 아이들은 대개 자신이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그렸다면 이번 아이들은 미래의 직업과 함께 여가생활을 하는 모습을 더 크게 다루었다는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회장 지선이만 변호사 혹은 의사로 일하는 모습을 그렸고, 지훈이는 회사에서 일하거나 경찰로 일하는 모습과 함께 아이를 돌보고, 텔레비전을 보고, 농구를 하는 모습 등을 더 많이 그렸다. 유리도 태욱이도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모습을 더 크게 그렸고, 대용이도 하와이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모습을 더 우선해서 그렸다. 운동과 요리와 발명을 즐기는 선형이는 직업과 취미를 연결시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훈이는 회사에서 일하는 모습은 졸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실패자가 되면 회사에서 일할 것이라며,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재미없고 매우 피곤한 일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아빠의 모습에서 발견한 부정적 이미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어른들을 삶의 이상이 아니다. 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좋은 역할모델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아이들은 모두 적당한 시간 일하고 적당한 휴식과 여가를 즐기며, 삶을 재미있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기 주변에 그런 어른들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어른들은 피곤에 지치고, 그리고 불안에 떨며 아이들을 족친다.

 그 불안의 한 가운데에 있는 재철이가 말했다.  자신은 ‘동북공정’ 때문에 역사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지만,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어쩌면 서울역에서 노숙자가 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재철이에게 문제가 있음을 직감했다.

  재철이는 모든 게 다 불안하다고 했다. 성적이 낮아서 불안한 건 물론이고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에 대해서도 모두 불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재철이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재철이는 엄마의 친구 자녀들은 모두 공부를 무척 잘하며, 친척들 역시 모두 카이스트나 서울대를 갔다고 했다. 친척들이 모이는 설이나 명절이 가장 불안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80점대도 들어가지 못하는 것 때문에 잠을 자는 것도 불안하다.

 재철이의 맺힌 아픔이 자꾸만 끄윽끄윽 터져 나온다. 아이들은 울지 말라고 말렸지만, 나는 맘껏 우는게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대안을 말해달라고 했다. 재철이보다도 형편이 많이 어렵고 성적도 나쁜 태욱이가(아빠는 집나가고 알콜중독, 우울증 걸린 엄마에 대한 불안, 알바이트를 해야 하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미 상담을 했던 태욱이다) 말했다.

 “꼭 공부로 승부할 필요는 없잖아. 너만의 길을 찾아!”

 태욱이는 자신은 공부보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나, 아니면 동물사육사 같은 직업을 갖고 싶다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여유있게 말했다.

“아니야, 나는 공부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재철이의 불안감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우리는 잘 안다. 아이들은 재철이에게 자신감을 가지라며 많은 조언과 충고를 쏟아냈다. 

  그런데 아직도 코끝이 빨간 재철이가 갑자기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중진이형 한테 전화 왔었어요.”

 우리는 모두 놀랐다.. 중진이는 아무의 전화도 받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와도 만나려고 하지 않는데 스스로 재철이에게 전화를 했다니 그건 매우 놀라운 일이다. 더구나 어제 전학을 간 학교에서 퇴짜를 맞은 직후라 더 그랬다.

 “학교에 오고 싶지만, 아직 용기가 나지 않는대요. 선생님, 우리가 집에 가서 중진이형을 데리고 오면 어떨까요? ”

  눈물 자국이 남아있는 재철이 얼굴이 밝아진다. 대용이 말처럼 공부만 아니면 모두가 ‘에이스’인 아이들! 누가 이 착하디착한 아이들을 주늑 들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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