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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학부모의 날
조회 103
회원이미지김은형
2008-03-21 17:12:00
       
 

이천 팔년 삼월 십육일

학부모의 날


 오늘은 학부모들이 학교에 와서 수업참관을 하고, 학교운영위원도 선출하고, 담임교사와 대화를 하는 일면 ‘학부모의 날’ 이다. 이 날을 대비하여 온통 학교는 분주했다. 대청소를 하고, 환경미화 심사를 마쳐야 했다.

 강당에서 모든 일정을 마친 학부모들은 네 시가 넘어서야 교실에서 담임과 만날 수 있었다. 우리 반에 가보니  재철이, 지훈이, 지선이 엄마가 와 계셨다. 재철이는 고충처리위원장이고, 지훈이는 부회장, 지선이는 회장이다. 사실 학급 내에서 가장 열심히 활동하고,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이다. 그러나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더 큰 사랑과 관심을 주기를 원한다.

“선생님, 우리 지훈이가 3학년 때 좋은 담임 선생님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드디어 하느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무척 기뻐했어요.”

“우리 재철이도 3학년 올라와서 학교에 오는 것이 아주 즐거워졌대요.”

“우리 지선이도 무척 행복해 하고 있어요.”


 칭찬을 받는 건 좋지만, 아이들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진심어린 충고를 빠뜨릴 수는 없다.  나는 우선 재철이 엄마를 야단치기로 마음 먹었다. 재철이는 작년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힘든 생활을 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그 이유는 점수관리를 하느라 친구들보다는 선생님들께 잘 보이려는 모습 탓이다. 그렇게 1,2학년을 힘들게 지낸 재철이는 지금 달라지려고 애쓰고 있다. 재철이는 요즘, 친구들과 원만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자기가 먼저 친구들을 배려하고 겸손해져야함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며칠 전, 수업 중 재철이는 잠을 잘못 자서 그런지 목을 움직일 때마다 아프다고 호소했다. 통증 때문에 수업에 집중하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에, 조퇴를 하고 정형외과 물리치료실에 가서 찜질을 받으라고 권했다. 경험상 그렇게 하면 빨리 좋아지지만, 파스나 붙이고 있으면 꽤 여러 날 고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와 통화를 한 재철이는 엄마가 자신을 믿지 않는다며 전화를 바꿔주었다. 재철이 엄마는 ‘그 애가 꾀병을 하는 것 아닐까요?’하고 물었다. 재철이 엄마의 딱딱한 말투를 들으며, 재철이를 여유롭지 못한 아이로 만드는 것은 엄마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엄마의 성과주의적인 태도가 재철이를 여유 없는 아이로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철이 엄마는 자신이 재철이를 몰아붙이고 있었던 점을 시인했다. 하지만 여전히, 재철이가 자주 아프다고 하는 것을 짜증스럽게 생각하는 듯해서, 나는 좀더 설명을 했다. ‘재철이의 체격은 매우 작고, 체력 또한 제 나이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재철이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몸을 보호하는 운동이나 음식, 휴식 등이 더 중요한 시기입니다’라고 말이다. 재철이 엄마는, 재철이가 왜 그렇게 학교에 꼭 와서 담임선생님을 만나보라고 당부했는지 이제 알겠노라고 말하셨다.

 

  지훈이 엄마 역시 지훈이에 대한 큰 기대와 욕심을 숨기지 못하고 계셨다. 나는 지훈이에 대해서도 몇 가지 예를 들어 문제점을 지적했다. 지훈이는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크고 누가 봐도 우리 반 최고의 ‘킹카’ 다. 하지만, 지훈이의 마음과 인품은 매우 부족한 편이다. 부회장으로서 학급의 리더지만, 충분한 리더쉽을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참을성, 너그러움과 같은 똘레랑스가 부족하다. 지훈이는 과학고를 목표로 목동의 학원까지 다니며 무리할 정도록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힘겨운 생활로 인해 성격이 까칠해지고 만다. 바로 이 점이 진정한 교육과 거리가 발생한다. 머리가 좋고 우수한 두뇌를 가진 아이들은 특히, 초중고 시절 봉사정신과 양보, 희생과 같은 가치와 덕목들을 충분히 길러주어야만 한다. 그것이 장차 크고 위대한 인물을 길러내는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지훈이 엄마도 지훈이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처럼  ‘형제 없이 혼자 자라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식의 결론이다. 문제의 해결은 부모가 아이를 태하는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부모가 먼저 관용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학급회장으로서 말없이 일 잘하는 지선이에 대해서는 칭찬 밖에 할 게 없었다. 작년에도 지선이를 줄곧 봐 왔던 탓이다.  작년 초 자기소개를 할 때, 지선이는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꼭 효도를 하고 싶다고 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사라지고 있는 고전적인 발언이었는데, 지선이에게 느껴지는 진정성 때문에 무척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었다. 올 해 지선이가 내 곁에 가까이 있게 되어 나는 무척이나 기뻤다.

 얼마 전 나는 ‘지선아 나는 네 얼굴만 봐도 행복하구나!’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지선이에

게는 무척이나 기쁜 말이었던가 보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엄마의 가게로 가서,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엄마, 비밀인데요. 이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마세요. 우리 선생님이 저를 보고, 제 얼굴만

봐도 행복하대요.”

 나는 지선이가 힉급의 온갖 궂은 심부름을 넉넉하게 감내하는 모습을 칭찬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지선이 엄마는 집에서 지선이의 모습에 대해 더 놀라운 얘기를 해주셨다.  지선이

할머니가 노환으로 거동을 못하시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상황인데 지선이는 어른도 하

기 힘든 할머니의 수발을 마다하지 않고 냄새나는 그 옆에서 잠을 자주 잔다는 것이다.

 ‘그랬구나.’

 내 판단이 결코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지선이를 위한 충고도 빠뜨릴 수 없었다. 지선이의 헌신성과 봉사정신은 훌륭하지

만, 여성의 경우 자칫하면 훌륭한 지도력을 갖추고도 남의 보조자로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지선이를 덕망 있는 지도자로 클 수 있도록 적극성을 길러줄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른 사람도 배려해야하지만, 자기 자신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의식적인 노력과

약간은 콤플렉스가 있다는 외모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한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눈 후, 학부모들은 돌아갔다. 이런 저런 얘기를 했지만, 사실 꼭 만나 보아야할 학부모들은 학교에 오지 않고, 문제가 없는 학부모들은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참여한다. 교육에서의 격차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먹고살기 바쁘거나 자신감이 없는 학부모들은 아이들에 대한 의논의 기회조차 갖지 않거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진짜 학부모들을 만날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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