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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겨울전국연수-소설교육(충남대) 연수후기 - 2강 최시한 선생님
조회 1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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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이미지이성수
2012-01-30 11:57:31
       

최시한 선생님의 이번 강연은 마치 도올 선생을 보는 듯 강렬했습니다 ^^;; 

제일 인상적인 문구로 맨 앞을 시작합니다~~

스스로 혁신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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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 작품 교육에서 소설 교육으로

 

최시한 선생님

 

우리가 흔히 소설을 가르치면서 ‘이건 정말 꼭 가르쳐야지 마음 먹었던 것’ 그것들 10개 중 7,8개는 10년 안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쳤던 것들 그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얼마나 하찮아지는지. 세월의 풍상을 견디고 살아남는 것들은 얼마나 되는지. 정말 한 줌도 안 된다. 사랑도 하찮아지고 교육도 하찮아진다.

 

소설을 가르칠 때, 이것만은 꼭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 그것을 믿지 말자. 나는 오늘 무엇을 가르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머리를 뒤집어주기 위해서 왔다. 머리가 뒤집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뒤집어져야 한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 ‘선생님, 선생님은 어떻게 글을 잘 쓰십니까?’ 난 자수성가 했다! 여러분들도 ‘자수성가’해야 한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 ‘세대적 질곡’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뒤집어져라! 하지만 싫다. 왜? ‘자기 자신과의 직면이 싫다!’. 그런 거다. 자기 자신을 직시한다는 것은 무척 용기가 있는 행동이다. 용기를 내라.

 

소설을 가르칠 때 누구나 소설의 핵심이라고 동의하는 것은 다음 세 가지다. 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자.

 

1. 소설은 이야기(서사)의 일종이다.

1-1. 줄거리(스토리-사건의 연쇄)가 있다.

 

소설의 출발은 ‘줄거리’다. ‘줄거리’를 파악하라고 하는 것에서 소설 교육은 시작한다. 대부분의 짧은 소설은 몇 문장으로 줄일 수 있다. 그렇게 줄이고 줄여서 작품의 중심사건(핵심적 상황변화)를 짚어낼 수 있도록 하라. 줄일 때 학생 수준에 맞게 몇 가지 제약을 덧붙이는 것이 좋다. 주어를 누구로 하는 문장으로 써라. 몇 문장 이내로 하라. 등등의 제약.

 

1-2. 줄거리를 어떻게 파악하고 요약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좌우된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옥희 엄마는 옥희를 위해 ‘희생했다’이냐 아니면 ‘어쩔 수 없이 결혼을 못 했다’이냐. 줄거리 요약에서 둘 다 가능하다. 어느 하나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표현의 의미는 정말 다르다. 줄거리 요약에서 어떤 사건의 동사를 무엇으로 선택해서 쓰느냐에 이미 작품에 대한 해석이 다 담겨 있다. 이걸 느낄 수 있는 언어적 감수성 그걸 가르쳐라.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은 작지만 중요한 ‘차이’들이다. 그 섬세한 결을 짚어낼 수 있도록 하라. ‘감수성’ 느끼고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 그것의 여부에 따라 인간의 급이 다르다. 섬세한 인간 수준에서 목석 수준까지!

 

1-3. ‘줄거리’와 ‘서술’의 두 층위로 나누어 다룰 수 있다.

 

이 발견은 서사학의 신기원을 열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공로다. ‘줄거리를 요약한다’는 것은 ‘서술’된 텍스트에서 ‘사건의 연쇄’를 바탕으로 핵심적 상황변화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이 ‘줄거리’는 ‘서술’된 텍스트 안에 직접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줄거리는 어디에 있느냐? 작품 안에 있느냐? 아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걸 정리해내라고 한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줄거리를 찾아내는 능력 이게 언어 능력이다.

 

2. 소설은 허구(좁은 의미의 문학)이다.

2-1. 그 언어가 지시적 기능보다 ‘문학적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보자. ‘동백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중요할까 아닐까?

중요하다. 문학적 기능을 수행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농염한 붉은 빛의 동백꽃’으로 이해하기에 이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은 어설프다. 이 작품의 제목은 이른 봄에 산골에 피어나는 노란빛 동백꽃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랑도 아니고 사랑이 아닌 것도 아닌, 무슨 짓을 하는 지도 모르고 서로 싸우고 다투는 이 이야기가 제대로 살아난다. 꽃이면서 꽃이 아닌 것도 아닌, 봄이면서 봄이 아닌 것도 같은. 그 알 듯 말 듯한 우리가 어느 새 겪고 넘어선 그 시기의 감성이 비로소 전달된다.

 

2-2. 사실과 가치가 ‘낯설어진’ 상태에서, 그것을 새롭게 찾고 모색하는 과정이다.

 

위에서 줄거리 요약을 설명할 때, 제시된 답지에서 정답이 무엇이냐고 내게 묻는다. 그걸 묻지 마라. 정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소설을 가르칠 때 무엇이 중요한가? 이 소설 속 이야기가 진짜로 있었느냐 없었느냐 이런 건 중요하지 않다. 문학은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 다시 말해 문학은 가치와 규범과 진실이 애매한 공간이다. 유일무이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문학은 허구다. 가짜 이야기다. 그럼 왜 가짜 이야기를 읽느냐? 다른 이야기를 잠시 하자. 북한에 가니 환자들은 평상복을 입고 보호자들이 환자복 가운을 입고 있다. 왜 그렇게 해놓았느냐고 물었더니, 보호자들이 들락거리며 세균을 묻혀오니 그런다고 한다. 우리와 정반대의 상황! 낯선 것의 충격! 무조건 옳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짜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마음과 머리를 기른다. 그것이 중요하다.

 

3. 소설은 서술자가 있다.

3-1. ‘서술된 행위(사건)’과 함께 그것을 ‘서술하는 행위’가 의미를 형성한다.

 

<동백꽃>의 서술자는 ‘나(소년)’이다. 독자는 처음에 ‘나’와 마찬가지로 점순이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해서 소설을 읽는 내내 그것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게 된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나’는 점순이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독자는 알게 된다. 만약 점순이가 화자였다면 이렇게 알 듯 모를 듯 하는 그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감정에 대한 느낌이 달라졌을 것이다. 훨씬 억세어지고 적나라해졌을 것이다. 소년을 화자로 삼았기에 노란 ‘동백꽃’에서 받을 수 있는 느낌이 소설 속에서 표현된 것이다. 결국 화자가 대상에 대해 서술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3-2. 언어를 매재로 삼는다.

 

언어적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 <반지의 제왕>이 뭐냐?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절대 반지>로 번역해야 하지 않나? <마당을 나온 암탉>의 중심 사건이 뭐냐? ‘마당으로 나온 암탉’이 아니다. ‘마당에서 살고 싶어서 마당으로 나왔는데, 마당에서 살지 못해서 마당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을’에 주목할 수 있는 언어적 감수성. 이걸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질문>> 작가의 의도는 알 수 없다고 하셨는데, 알 수는 없더라도 그것이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는 있지 않은가요?

1) 현재 문학교육에서는 ‘작가의 창작 의도’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문학 작품의 감상과 해석에 작가의 창작 의도는 일차적 중요성이 없다. 2) 한데 지금 교과서를 보라. 작가의 창작 의도를 알면 모든 것을 다 알게 되는 것처럼 가르친다. 작가의 창작 의도를 절대화하고 왜곡하고 있다. 3) 작가라는 존재는 허구적 이야기에서는 뒤로 물러나 있는 존재다. 작가가 소설 속에 등장하면 그게 소설인가? 아까 <동백꽃>의 예를 상기해보라. 나는 소년의 시점에서 서술함으로써 ‘이런 이런 효과가 있다’고 했지, 작가가 이런 ‘의도’로 소년의 시점에서 서술했다고 설명하지 않았다.

 

질문>> 목석 같은 아이들의 감수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 줄거리가 곧 서술인 갈래를 먼저 읽히는 것이 쉬운 방법이다. 설화, 동화를 읽혀라. 그 다음에 소설을 읽혀라. 만화를 보는 것은 되도록 줄이는 것이 좋다. 문학의 정수는 언어 그 자체다. 만화는 상상력을 바로 보여주기 때문에 상상력을 제한한다. 언어는 앞으로 그 어떤 매체가 닥쳐와도 살아남을 것이다. 상상하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상상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언어가, 문학이 갖고 있는 힘이다. 그 힘을 익힐 수 있게 하라.

 

문학을 가르칠 수 있어서 행복한 것이 국어교사다. 하지만 바로 그 문학 때문에 괴롭기 짝이 없다. 괴롭다면 혁신하라. 목석 같은 아이들이라고 탓하지 말고 그들의 감수성을 일깨우기 위한 방법을 찾아라. 책을 읽고, 이론을 공부하고, 고민하라.

 

스스로 혁신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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