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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연수 작가의 강연 내용 정리
조회 17127
회원이미지모개
2012-01-29 09:16:35
       
(개인적으로 남겨두고 싶어 정리한 글을 여기 복사해붙입니다. 후기 쓰면, 책도 보내 주나요?? ㅋㅋ)
 
 
전국국어교사모임 겨울 연수(2012년 1월 28일 토요일 오전) 마지막 강좌가 김연수의 강의였다. 자료집에 적힌 제목은 "소설가가 들려주는 소설 이야기". 그의 이야기를 정리해본다.

 

 김연수는 우리를 약간 기다리게 했다. 그러나 그는 늦지 않기 위해 지난 밤에 막걸리를 마셨다고 한다. 술을 마시면 잠을 자는 버릇을 믿었는데, 그만 2차, 3차까지 가는 바람에 늦게서야 잠이 들어버렸고, 그래도 6시 반에는 일어나서 이렇게 도착한 거라 한다.


 

 

 

 몇 개월 전에 강의 제안을 받고, 어떤 소명의식(calling)으로 덜컥 승낙을 하고 말았단다. 학교나 선생님을 생각하면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안 좋은 기억이 있는데, 자신도 초등학교 때 그런 기억이 있다고 하신다. 어떤 전체 모임에서 잠깐 한눈을 팔고 있었던 모양.

 선생님 : 너, 나와!

 김연수 : (자신을 가리키며) 저요?

 이 '저요?'란 말이 선생님들을 더 화나게 한다는 걸 그땐 모른 모양이다. 아니 알았대도, 이상하게 그런 습관이 있었단다.

 선생님 : 그래, 임마! 빨리 뛰어나왓!

 그래서 뛰어서 선생님 앞으로 갔더니, 선생님은 아이가 뛰어가는 그 반동을 이용해 가슴팍을 발로 찼다는 것이다. 아아, 그렇다면, 왜 뛰어오란 거야? 그냥 걸어오라지! ㅋㅋ

 그런데도 국어교사들의 모임이 자신을 불러준다는 것에 어떤 소명의식이 있어서 왔다는 것이다. 물론, 그일 말고는 선생님들로부터 줄곧 귀염을 받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나라는 선생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있을까?)

 

 김연수는 아주 자그마했다. 미소년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꼼수 주진우를 닮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렇다. 주진우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아마 그보다는 웃음기가 많은 사람이다. 끊임없이 웃으며 강의를 하였다.

 

 

 

 그의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모국어의 힘, 또 하나는 소설적인 아름다움. 나는 두번 째 이야기에 반하고 말았다.

 우선, 모국어의 힘. - 모국어와 외국어는 다르다. 모국어는 지시적 의미를 넘어서서 모든 경험의 총체를 머금고 있다. 어마어마한 광맥이 숨어있는 말이 모국어다. 그래서 모국어를 외국어로 뒤치는 데는 언제나 한계가 있다. 불가능한 짓이다. 그리고 모국어로 뭔가를 끄적거린다는 것은 그것을 이룬다는 뜻이다. 가령, 나에게 어떤 느낌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말로 써내면 그것은 현재화된다. 쓴다는 것은 뭔가를 이룬다는 것이다. 모국어로 뭔가를 쓴다는 것. 그것은 세상을 받아들이고, 나를 둘러싼 세상을 만드는 방식인 것이다.

 김연수라는 소년은 성균관대 영문과 출신이다. 올해로 글을 쓴지 19년째라, 드디어 십팔년이란 욕 같은 연도를 벗어났다고 한다. 아니, 십구년도 욕 같다며 또 우스개를 던진다. ㅋㅋ 아무튼 그는 소설가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단다. 어려서 그는 천문학자가 꿈이었단다. 빅뱅을 연구하는 천문학자. 지금도 연구 중이란다. 고1 때 <어린 왕자>를 읽었다. 처음엔 그림도 있는 유치한 책이라 여겨 안 읽고 싶었는데, 어찌 읽게 되었단다. 읽고 나니, 세상의 문제점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단다. 특히, 여자친구가 없다는 문제점. 그래서 여자친구가 생겼단다. 그리고 <데미안>도 읽었다. 읽고서는 놀라운 발견을 한다. 아, 악(나쁨)이나 죄에도 논리적 타당성이 있구나. 죄에 대해 벌 주는 것은 타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겠구나. <죄와 벌>, <주홍 글자> 같은 세계문학들을 섭렵하면서 문학과 소설을 알게 되었단다. 그리고 이때쯤 우리 연수(전국모 겨울 연수, 공교롭게도 이 미소년의 이름도 연수다. ㅋㅋ)의 주제를 뒤돌아본다. "소설수업의 새길 찾기 - 교과서와 EBS를 뛰어넘는 소설 교육". 아, 이건 너무도 당연한 거란다. 소설은 교과서의 반대말이다. 소설은 학교의 반대말이다. 문학이나 소설은 죄를 벌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니까, 한 마디로 표준이나 상식을 뒤집는 것이니까,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것,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니까.

 

 자연스럽게는 연수는 문장론으로 치닫는다. 그는 좋은 문장을 쓰려고 노력했다. 좋은 문장이란 모국어가 가진 모든 가능성들을 타진해보는 것이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 모든 가능성들, 생각들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모국어다. 수많은 가능성들을 언어화시킨다는 것은 애매한 것을 또렷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묘사를 잘해야 하는데, 시에서는 비유를 주로 쓰고, 소설에서는 사건을 활용한다. 가령, 인물을 만들 때 모든 가능한 검사들을 생각해보는 거다. 검사는 권력의 화신일 수도 있고, 가난하게 살면서도 양심을 지키겠다는 검사가 있을 수도 있고, 그냥 월급받고 예쁜 마누라 얻어 사는 게 꿈인 평범한 검사도 있을 수 있다는 거다. (이 대목에서 더욱 주진우가 떠올랐다고 함께 간 선배는 말했다.) 좋은 문장은 지금까지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가능성, 누구도 안 쓴 표현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표현이 '진짜 그럴 듯하다'고 인정받는 것이다. 이것을 해 낼 때 김연수는 기쁨을 느꼈다고 말한다. (혼자 도서관에서 읽고 끄적거리면서 기쁨을 느낀 소년! ㅋㅋ)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보여주는 것, 이것을 발견해내는 것이 국어 수업이 아니겠냐고 그는 말한다.

 

 그러면서 그의 이야기는 두번째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된다.

 

 흔히 사람들이 재능의 문제를 말하는데, 그 재능이란 건 새로운 문장과 낡은 문장을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란다. 예를 들며, 그는 지구 멸망 이야기를 한다. 29세 때, 연애가 실패하고 지구도 끝날 줄 알았단다. 마침 그 때가 1999년이었단다. (나는 뭘 믿고 29세에 결혼을 한 걸까? ㅋㅋ) 그러니까, 새로운 표현, 좋은 문장을 쓰는 것을 학교에서는 가르칠 수 있다. 문장을 줄이고 진부한 문장은 날리고, 등. 중고등학교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시학'뿐이다.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을 가르칠 때도 시처럼 쓰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렇다면, 소설처럼 쓴다는 건 무언가? <데미안>을 읽고 충격을 받았단다. 이건 문장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까, 시는 문장의 문제일 수도 있으나 소설은 인생의 문제다. 인생을 이해하는 문제에 가까운 것이다. 소설은 인생에 대한 교과다. 모국어 자체가 인생과 밀접하지 않으냐. 여기서 그가 말하는 "소설적 아름다움"이 나온다. 내가 반했다고 한 두 번째 대목이다.(철학에서 흔히 말하는 "모든 의미는 사후에야 드러난다"인데도, 나는 그의 이야기에 반했다. 그러니까 그는 이 철학적 명제를 철학으로 배운 게 아니라, 문학으로 그러니까 삶으로 배운 거다! 나는 언제나 기껏 철학에다 내 삶을 끼워맞추고 있다고나 할까! 철학의 폐해다.)

 

 (다시, 김연수가 화자다.) 소설적 아름다움이란 뭘까? 첫째 문장의 아름다움, 둘째 서사의 아름다움. 서사의 아름다움이란 건 예를 들면, 어릴 때 올랐던 동산,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어떤 사람 같은 거다. 그러니까 지금은 되풀이할 수 없는 것, 그것을 아는 것이 서사적 아름다움이다. 누구나 한번은 인생이 명작이 된다. 그것은 바로 죽을 때이다. 소설은 시간의 양식인데, 결말 부분에서는 모두 조금씩은 감동을 받는다. 소설을 두 번째 읽을 때 보이는 결말 앞에 일어난 사건들, 아, 이것은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 없다. 소설의 감동은 '되풀이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은 두 번 쓸 수밖에 없다. 초고를 정말 간신히 쓰고, 그것을 다시 되짚어가는 것이 재고다. 천재, 가령 이상 같은 사람은 초고를 자신의 삶으로 쓴다. 일단, 금홍이하고 한 번 살아보는 것이다. 자기 삶이 초고이고 그것을 그대로 글로 옮겨 쓰는 것이 천재의 초고다. 그래서 천재들은 몸이 좋다. 몸으로 맞딱뜨리기 때문에 일찍 죽는다. 대부분은 삶이 아닌 글로 쓴 초고가 필요하다. 폭풍같은 연애를 직접 해 볼 수가 없다.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모국어로 써내는 것이 초고인데, 그것은 다른 사람이 되어보려고 노력하는 것, 천재의 삶을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것, 폭풍같은 연애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초고는 시적으로 쓰고, 재고는 마치 다시 사는 것처럼, 소설적으로 쓰는 거다. 재고를 쓸 때, 이 부분은 빼고 이 부분은 생생하게 살리고, 이젠 아는 거다. 다 썼으니까, 한 번 살아봤으니까. 서사적으로 아름답다는 것은 이 생생해지는 사건이다. (그의 말을 기억해 재현하려니,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다시 내 말로 옮기자면, 그가 말한 것은 이렇다.) 서사적 아름다움이란, 인생의 결말을 알고 나서 사후에 드러나는 어떤 사건의 생생함이다. 그러니까, 서사적 아름다움은 반복이 안 될 때의 아름다움이다. 두 번째 쓸 때 드러나는 의미들, 인생을 두 번 살 때 아주 잘 살 수 있겠지만, 그걸 몰랐을 때, 그러니까 반복이 안 될 때의 아름다움이다. (그렇다면, 내 인생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번 인생은 꽝이다. 다시 처음부터 다시 살아봐야 하겠지만, 반복이 안 된다. 아 뭐야? 그러니까 김연수가 말한 서사적 아름다움이란, '비극'이었다는 건가? 그러나 그 비극이 바로 서사의 아름다움이다. 인생의 아름다움이다.

 반복이 안 되는 인생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두 편의 소설 이야기를 했다. 내가 모르는 외국 작품이었다. 하나는 인생을 다시 살아서 아주 잘 살게 되었다는 것, 하나는 다시 살았는데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 것. 그러니까 나를 까먹은 것이다. 1분도 자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1분 동안 코끼리만 생각하라는 주문은 실천 불가능하단다.

 

 문학 교육은 다른 가능성을 계속 알려주는 것이란다. 도덕, 윤리 등의 과목(교과서와 학교 교육, EBS)에서는 알고 있는 답을 찾는 것이다. 한계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은 모르는 것을 찾는 것이고, 한계를 넘어서는 가능성을 찾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학 교육은 본질적으로 반교육적이다. 학교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제한은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모국어는 제한이 없다. 소설 교육은 가능성에 대한 교육이다. 상식적인 인간은 키우지 않는다. 국민 교육은 표준화된 인간을 키우는 것이다. 소설에는 표준에서 벗어난 인간과 인생 경험이 있다. 그래서 소설은 본래 금서였다. 그러니까 문학 교육은 혁명적이다. 교과서, EBS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너무다 당연한 얘기다. 교과서는 발판이 될 뿐이다.

 다음 주에 그의 신작 <원더보이>가 나온단다. 절대 돌려보지 말고 사서 보라고 한다. 돌려보면, 박테리아가 옮는다나? ㅎㅎㅎ

 

 <질의 응답>이 있었다.

1. 청소년에게 읽히면 좋은 소설?

-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고1,2학년 때 읽으면 좋단다. 18-19세기의 작품들은 인류의 역사에서 청년기의 작품들이라 청년기에 읽어야 좋단다. 30대 후반에 이런 클래식을 읽으면 전혀 충격이 없단다. 소설 속 사건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소설의 질문 자체가 진부할 뿐이란다. 청년기에 읽으면 질문의 충격이 있는 거다. 그는 클래식을 읽고 나서 생각한단다. 어렸을 때 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사실, 10대가 그걸 안 읽으니 억지로라도 읽혀야 하고, 얼마간의 허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실 10대 때는 심리학서나 철학서를 읽히는 게 좋다. 새로운 관점들이 있다. 굳이 소설을 안 읽혀도 될 것 같다. (이 부분은 나와 생각이 같다. ㅎ)

 

2. 소설 쓰시면서 고민의 흐름들?

 (타인들끼리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 소통은 불가능할지 모르나 서로 위안은 가능하다)

40세는 인생에서 줄이 그어지는 순간이다. 죽음에 대해 맞닥뜨리게 된다. 그는 이베리아 반도를 헤매다녔단다. 성당에서 피에타 그림을 보았다. 성모와 그 밑에 죽은 예수. 예수를 바라보는 성모의 텅 빈 눈빛. 거기서 위안을 얻었단다. 아, 예수님도 죽는구나. 다 죽는구나.

 

3. 김연수를 좋아한다는 어떤 쌤. 시로 등단했다가 왜 소설을 쓰게 되셨는지?

 시인들의 생태. 술. 장석남.

 소설가들의 생태. 규칙적인 생활. 쏟아부은 만큼 나오는 소설.

 23세 때 <작가세계>로 등단했을 때의 경험담.

 

4. 뭐하고 지내시는지?

 84년-87년에 듣던 옛날 음악들을 듣는다. <원더보이>에 나온다나? ㅋㅋ

 제발트(독일작가, 영국에서 자람)의 소설들을 읽고 있다. 문장이 참 좋다. 한국어로 번역된 문장이지만, 그의 소설을 읽으며 다시 자신의 모국어로 그것을 번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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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산문집과 소설들을 좀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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