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속에서 다시 읽고 싶은 곳.
하나-- 장씨 할아버지(아름이 이웃):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 있는 인물. 60대의 할아버지로 아름이의 유일한 친구, 극의 재미를 더해주는데 큰 몫을 한다. 그러다가 가슴을 찡~ 하게 하는 역할을 함.
(촬영중인 아름이네 집에 불쑥 방문하여 방송국 사람들에게)
"아름이 쟤는 아주 나쁜 아이입니다."
"네?"
우리는 한 번 더 장씨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왜요?"
"쟤는 저를 무슨 동네 형 대하듯 하거든요. 집에서 아주 버릇없이 키운 게 틀림없습니다. 지가 무슨 진짜 내 또래인 줄 알아요."
작가누나가 예의상, 진짜 예의상 한번 더 물었다. 대충 받아주고 어서 끝내려는 것 같았다.
"아름이가 정말 할아버지를 형저럼 대하나요?"
할아버지가 어이없고 기가 막힌 표정으로 답했다.
"네."
"그럼 할아버지는 아름이를 뭐라고 생각하시는데요?"
그러자 장씨 할아버지는 새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쑥스러워하면 한마디 했다.
"친구요......." (160)
둘--. 다시 읽고 싶은 곳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나는 그 찰나의 햇살이 내게서 급히 떠나가지 않도록 다급하게 자판을 두드렸다.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그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누구도 본인의 어린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하니까, 특히 서너살 이전의 경험은 온전히 복원될 수 없는 거니까, 자식을 통해 그걸 보는 거다. 그 시간을 다시 겪는 거다. 아, 내가 젖을 물었구나. 아, 나는 이맘때 목을 가눴구나. 아, 내가 저런 눈으로 엄마를 봤구나, 하고. 자기가 보지 못한 자기를 다시 보는 것. 부모가 됨으로써 한번 더 자식이 되는 것. 사람들이 자식을 낳는 이유는 그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면 세살 무렵부터 늙기 시작한 아기를 가진 우리 부모님은 나를 통해 무엇을 보았을까... 곧이어 나는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하느님은 왜 나를 만드셨을까?'
불행히 그 해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79)
셋- 다시 읽고 싶은 곳
"또래 아이들이 가장 부러울 때는 언제야?"
"많죠! 정말 많은데... 음, 가장 최근에는 티브이에서 무슨 가요 프로그램을 봤을 때예요"
"부러웠구나? 꿈을 이룬 아이들이"
"아니요, 그 반대예요."
"제 눈에 자꾸 걸렸던 건 거기서 떨어진 친구들이었어요. 대부분 울음을 터뜨리며 부모 품에 안기더라고요. 진짜 어린애들처럼. 세상의 상처를 다 받은 것 같은 얼굴로요. 근데 그 순간 그 애들이 무지무지 부러운 거예요. 그애들의 실패가"
"그 느낌이 정말 궁금했어요. 어, 그러니까... 저는...뭔가 실패할 기회조차 없었거든요"
"실패해보고 싶었어요. 실망하고, 그러고, 나도 그렇게 크게 울어보고 싶었어요."(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