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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말 찾기] 어차피와 기어이
조회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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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이미지허재영
2010-10-04 10:22:18

‘어차피’와 ‘기어이’

 

허재영

 

우리말의 어휘적인 특징으로 한자어가 많다는 점을 들지 않는 사람은 없다. 엄밀히 말하면 한자어는 중국어에서 비롯된 어휘들이다. 그러나 중국어를 수입하면서 중국식 발음이 우리식으로 변용되었으므로 한자어를 중국어라고 할 수는 없다. ‘베이징’이 ‘북경’이 되고, ‘뤄양’이 ‘낙양’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 발음이 우리말에 들어오면 우리식 발음으로 변화한다. 물론 한자어 가운데 일부는 중국어에 없는 것들도 있다. 이른바 한국식 한자어이다. ‘돌(乭)’이나 ‘살(乷)’과 같이 중국어에는 없는 ‘ㄹ’ 받침의 한자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글자이므로 이 글자가 들어가는 한자어는 모두 한국식 한자어라고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어에서 들어온 한자어도 매우 많다. 예를 들어 ‘인간(人間)’이라는 말은 본래 ‘인생세간(人生世間)’을 줄인 말로 ‘속세’를 뜻하였으나 일본어의 ‘닝겐[にんけん]’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한자어 문제가 복잡한 까닭은 어휘의 근원지가 중국, 일본, 한국 등 다양한 분포를 보이기 때문이며, 이에 따라 한자어를 한자로 쓸 것인지 아니면 한글로 쓸 것인지 오랫동안 논란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 문제도 최근에 와서는 거의 정리가 된 듯하다. 최근에는 국한문혼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일지라도 한자와 한글을 섞어 쓰자는 주장은 거의 하지 않는다. 또한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한자 교육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자어의 문제는 표기상의 문제가 아니다. 엄밀히 말해 다른 언어에서 들어온 말이 우리말의 어휘 체계의 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말소리나 의미상의 변화를 보임으로써 복잡한 문제를 야기하게 되는 셈이다. 이 문제는 1933년 ‘한글마춤법통일안’을 제정할 때에도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자어를 본음대로 적을 것인지 아니면 속음(또는 변음, 민간음)대로 적을 것인지를 결정하지 않으면 맞춤법 통일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대립은 통일안 제정 당시에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동국정운』을 편찬한 까닭은 중국어가 한국어에 들어와 한국식 한자음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날 ‘외래어 표기법’에 들어 있는 ‘중국 인명·지명 표기’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인을 한글로 표기할 때 한자음대로 할 것인지 아니면 중국어 본음대로 할 것인지 원칙을 정하지 않으면 국어 생활에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자어 문제는 단순히 인명이나 지명 표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때로는 어원상 한자어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고, 음변화를 겪어 고유어처럼 인식되는 것들도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어차피(於此彼)’와 ‘기어이(期於而)’와 같은 말들이다. ‘어차피’는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라는 뜻을 가진 한자어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짜피’라고 발음하다 보니 표기를 잘못 하는 사례도 많다. ‘기어이’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라는 뜻인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기어이’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기어-이(期於-)「부사」

「1」=기어코「1」.

「2」=기어코「2」.

기어-코(期於-)「부사」

「1」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기어이「1」.

「2」결국에 가서는. ≒기어이「2」.

 

이 풀이를 고려할 때 사전에서는 ‘기어이’의 구조를 ‘기어(期於)’라는 한자어에 ‘-이’라는 부사 파생 접미사가 붙은 말로 풀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풀이는 ‘기어코’도 마찬가지이다. 어휘 의미를 ‘기어코’에서 설명하였으므로, 표준형을 ‘기어코’로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가 부사 파생 접미사인지 아니면 접속어 구실을 하는 한자 ‘이(而)’에서 온 말인지는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특히 근대 계몽기 문헌 가운데 상당수는 ‘기어(期於)’가 쓰일 상황에서 ‘기어(其於)’를 쓸 때도 있다. 같은 한자어인 ‘기어이(期於而)’인지 ‘한자어+고유어’의 구조인 ‘기어(期於)-이’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어원 의식이 흐려지면서 한자어와 고유어의 구별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바뀌면 한자어의 구조와 고유어의 구조도 변별되지 않는다. 권덕규의 『조선어문경위』에는 ‘기어(期於)이’ 또는 ‘기어(期於)ㅎ이’와 같은 표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기어이’의 ‘-이’를 ‘-히’와 같은 부사 파생 접미사로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자어에서 유래한 귀화어 가운데 어떤 말들은 음이 변화하여 어원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배추’의 어원은 ‘(白菜)’이며, ‘상추’의 어원은 ‘(生菜)’이다. 음변화를 겪으면서 ‘배추’, ‘상추’로 굳어진 뒤에는 한자어에서 비롯된 말인지 고유어인지 판단하기 힘든 어휘들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겨냥하다’의 ‘겨냥’에 해당하는 한자로 ‘견양(見樣)’이 나타난다.

 

. 主人이 前과 치 공을 달고 몬져 그 兒孩로 식이니 棒子 가지고 잘 見樣야 공을 치니 폭 고 소사오르거  다시 치니 곳 的中지라. (보통학교 학도용 국어독본, 권3 제8과)

 

‘겨냥’이 고유어인지 아니면 이 시기에 나타난 한자어인지 확증할 수는 없으나 이 문헌만으로 볼 때에는 한자어의 음변화에 따라 형성된 귀화어일 가능성이 높다.

 

고유어를 살려 쓰는 일이 우리말을 사랑하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한자를 쓰는 것과는 달리 한자어를 바르게 쓰고 이해하는 일도 국어 생활에서 꼭 필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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