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대 대학원 2학기에는 임수만 교수의 시 강의를 들었다. 여기 글들은 그 과제 중 일부이다. 세 시간 강의 중 1시간 정도는 서로 좋아하는 시를 사연과 함께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이 참말 좋았다.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전해야 할 시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북어대가리^^
■ 내용 전개상의 도치법과 아이러니 구조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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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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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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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a)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가)
나는 괴로워했다. (b)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a)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나)
걸어가야겠다. (b)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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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절이 화자의 심리 상태를 표출한 것임에 반하여 2절은 화자가 존재하는 상황을 제시하고 있음. 또한 1절의 진술은 ‘나’가 주어인데 반해, 2절은 ‘자연(상황)’으로 되어 있고, 1절은 자기 고백체라면 2절은 묘사체로 되어 있음. 이를 정리할 때, 1절은 주관의 표출, 2절은 객관에 대한 묘사할 할 수 있음.
- ‘오늘 밤에도’와 같은 어구는 오늘 밤만 별이 바람에 스치우는 어두운 상황인 것이 아니라 과거의 밤에도 지속적으로 그래왔음을 보여주고 있음. 심층 구조 상 이 시의 흐름은 과거와 현재의 어떤 상황을 체험하고 이에 대해 지금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보여주고자 함을 보여주는 것임.
- 표층구조에서 보았을 때 이 시는 ①나는 ~한데 ② 상황은 ~하다 로 진술됨. 그러나 이를 다시 전체적인 맥락에서 살펴보면 ② ‘처해진 상황은 ~함에도 불구하고’ ①‘나는 ~하겠다’로 해석 가능. 즉 표층 구조의 순서는 심층 구조의 반대로 드러난 것이며 내용 전개에 도치법을 사용하고, 표층 구조와 심층 구조 사이에 하나의 전도(conversion)가 일어남. 이는 일종의 아이러니 구조.
■ 반복과 병렬, 대립의 구조로 살핀 <서시(序詩)>
1절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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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a)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가)
나는 괴로워했다. (b)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a)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나)
걸어가야겠다. (b)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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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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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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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지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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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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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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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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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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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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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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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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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
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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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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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지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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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속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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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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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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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부공간과 하부공간의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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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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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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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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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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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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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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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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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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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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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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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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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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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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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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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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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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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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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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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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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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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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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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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공간의 침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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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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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사론적으로 (a)와 (a)’, (b), (b)’는 똑같거나 유사함. 의미소적인 층위에서도 (a)에 대한 (b)의 관계와 (a)’에 대한 (b)’의 관계가 같음.
- 1절의 (가)와 (나)는 엄격한 반복과 병렬의 구조를 보여줌. (가)의 시행들과 (나)의 시행들이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여줌. (가)가 과거에 대한 반성적인 의식, 화자의 내면 지향 행위,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준다면 (나)는 미래에 대한 의지 표명, 외부를 지향하는 행위,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것임
- 1절과 2절 역시 주관과 객관, 의식의 시간과 현실적 시간, 상부 공간과 하부 공간의 대립을 보여줌. 결국 이는 감싸는 1,2절과 감싸이는 1절의 (a), (b), (a)’, (b)’의 이중 복합 구조를 형성.
■ 주요 시어(이미지)와 시행의 의미 탐색
- (a), (b), (a)’, (b)’ 의 구조 : (b)와 (b)’가 각각 (a)와 (a)’의 결과로 자신이 실천해 옮기는 행위. 화자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는’ 삶의 진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 현실적 반응으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고’, ‘별을 노래함’으로써 깨달은 ‘사랑’의 진실 때문에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것임.
- ‘잎새에 이는 바람’ 이해 : 파괴, 사멸 혹은 폭력을 뜻하는 ‘바람’이 생명을 뜻하는 ‘잎새’를 스친다는 것은 생명의 억압이나 삶의 파괴가 자행되고 있는 이 지상의 상황, 즉 부조리한 일상 세계의 정황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 나무는 이때 생명 혹은 회춘의 상상력을 지닌 상징물.
-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해 : 피동문으로 진술되어 피동의 주체인 ‘별’을 강조. 억압적 상황 부각. 결국 2절의 진술 형식은 ‘우리들이 세속적 폭력과 불의에 억압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때 1절은 그럼에도 시적 화자는 ‘목숨을 다할 때까지 주어진 천명에 따라 부끄러움 없는 인생을 살겠다’는 인생관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음.
■ <서시>와 <제망매가> 비교
1절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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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a)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가)
나는 괴로워했다. (b)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a)’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나)
걸어가야겠다. (b)’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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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生死)의 길은 예 있으매 저히여서
㉠나는 간다 말도 못 다 이르고 가느닛고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같이
한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온저!
아,
㉢미타찰(彌陀刹)에 만날 나는
㉣도 닦아 기다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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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이승의 삶 그러니가 세속적이며 일상적인 삶의 무위성 혹은 허무성을 표현.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는 상황’으로 묘사된 우리들의 일상적 삶과 연관. ㉡은 ㉠과 같은 일상적 삶의 세계에서 생이란 마치 바람에 지는 나뭇잎처럼 파멸당하는 존재임을 형상화. ‘잎새에 이는 바람’의 이미지와 비슷. ㉢은 ‘미타찰’이 아미타불이 계신 곳이기에 ‘절대 지고한 진실,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나’로 해석한다면 이는 서시의 화자가 하늘을 우러르는 행위와 유사. ㉣은 깨우침의 길 혹은 부처가 가르치신 법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 이는 보편적으로 고귀한 이념의 길을 가겠다는 뜻으로 해석하여 <서시>의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걷는’ 행위와 유사함.
- <서시>의 (a)’는 제외된 것처럼 보이나 (가)와 (나)가 동일한 내용을 두 번 반복하고 있으므로 시의 기본적인 골격에서는 그 한 소절을 생략해도 무방함. 이러한 모티프를 시 대 시로 대응시켜보면 위와 같음.
- 이렇게 볼 때 윤동주의 <서시>는 신라 향가 <제망매가>에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음. 물론 사상적인 측면이나 세계관에선 다른 점을 찾을 수 있겠으나, 시대적 특수성이나 개인적 상상력의 굴절에 따라 그 형상화적 측면 혹은 사상적 배경이 다소 달라질 수 있음을 염두에 둔다면 두 시가 지니 시상의 원형 혹은 기본 구조는 동일하다 할 수 있음.